졸린 오후였다. 회사로 작은 박스가 배달되었다. UPS 맨이 주고 간 가벼운 박스 안엔, 흰 리번으로 장식된 하늘색의 티파니 박스가 들어 있었다. 그것도 두 개씩이나. 졸던 눈이 용궁에 간 심봉사처럼 번쩍 뜨였다. 아니 놀람을 넘어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애리조나에 가 있는 아들이 보낸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티파니가 보석점인지 빵집인지도 구별 못하는 사람이니 남편이 보낸 것은 아닐 터였다. 한 집에서 매일 보는 사이에 소포를 보낼 낭만파도 아니고 말이다. 포장을 푸는 짧은 시간 동안에 여러 생각이 오가고 감격으로 손이 떨렸다.
어머니날 선물로 보낸 은 목걸이였다. 딴 박스에도 디자인이 다른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아들에게 전화를 해보니 하나는 내 친구인 로빈 엄마 것이라 하였다. 비싼 선물은 아니지만(아마도 티파니 상점에서 싼 순서로 하면 5~6등 할 것이다), 아들의 마음 씀이 기특했다. 엄마 것만 보내지 않고 엄마의 베스트 프렌드까지 챙긴 센스가 고마웠다.
즐거운 마음으로 로빈 엄마에게 보여주고 좋은 것을 먼저 고르라했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로빈 엄마도 무척 좋아한다. 선물이란 것이 물건의 가치보다는, 나를 염두에 두고 마음을 썼다는 것에 감격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기뻐하는 상대의 모습을 상상하며 소소한 것이라도 챙기게 되는 것이 선물을 준비하는 마음일 것이다. 아들 키워 남 좋은 일 시킨다 생각했는데, 목걸이 하나에 모든 섭섭함이 다 날아가 버렸다.
아프고 났더니 집에 락앤락 용기가 가득하다. 수술 후 위로의 음식을 담아 보내준 것들로, 너무 많아 누구 집 것인지 구별이 안 된다. 뚜껑의 색깔로 분리해 두었다. 빈 그릇을 돌려보내는 법은 없는데 뭘 담아 갚을까 고민이다. 식혜를 받은 빈병도 여럿 있고, 죽을 담아온 보온병에 꼬리를 고아온 진공마개가 달린 병까지 수납장이 만원이다. 모두 사랑의 빚인 셈이다. 그릇 하나 하나에 담겼던 정성과 배려는 고마운데, 갚을 생각을 하니 숙제 같다.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읽은 분은 결혼 30주년을 축하한다고 꽃 한 다발을 사들고 왔다. 남편에게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꽃다발을 남으로부터 받고, 생전 처음 받아보는 티파니를 아들로부터 받았으니 올 5월엔 횡재수가 들었나보다. 나의 과잉흥분이 못마땅한지, 모두가 남편이 있으므로 생긴 선물이라고 주장을 편다. 꽃다발을 가져온 이는 자신의 후배이고, 목걸이를 준 사람은 자신의 아들이니 모두 자기가 아니었으면 못 받을 선물이라나? 무슨 이론인지 모르겠다. 정작 기념일에 선물 없이 묻어가려는 작전인 듯하다.
해마다 5월이면 남편의 생일, 어린이 날, 어머니날, 결혼기념일, 거기다 새로 생긴 부부의 날까지 이름 붙은 날들로 인해 계산이 복잡했다. 가정의 달, 장미의 계절, 계절의 여왕이라고 해도 즐겁지 않았다. 심지어 남편의 생일선물과 결혼기념선물을 비긴 것으로 치자며 그냥 지난 해도 있었다. 안 주고 안 받고… 셈은 깨끗해도 참으로 볼품없는 가족이었다.
올해 아들로부터 이른 어머니날 선물을 받고나니,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친다. 아직은 아이 같은 아들의 어린이날 선물도 챙기고, 노모께 보내던 성의 없는 어머니날 송금에도 정성을 더해야겠다. 남편의 생일도 성의껏 차려보겠다. 살면서 받은 사랑의 마음들을 머리를 굴려 갚으려니 골치가 아팠다. 가슴에는 가슴으로 화답을 하며,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살고픈 눈부신 5월이다.
이정아 / 재미수필문학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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