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상인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시위
샌디 화버 시장의 한인업소 영업시간 규제 발단
"단합력 보여줄 필요" "부정적 여론형성 우려" 평가 엇갈려
지난 1999년 11월24일 뉴저지 한인 밀집지역인 팰리세이즈파크에서 대규모 한인 시위가 있은지 만 10년이 지나고 11년째로 접어들었다. 당일자 뉴욕타임즈 B섹션 8면 하단 기사를 보면 "팰리세이즈 파크에서 인종차별을 두려워하는 한인상인 1천명의 시위’라는 제하에 성조기를 흔들며 ‘인종차별을 중지하라’, ‘동등한 정의’등 피켓을 들고 한인상인들의 서포트를 받은 시위대가 2시간 반동안 시위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이날 주최측인 팰리세이즈 파크 상공회의소는 시위 인파를 3천명 정도로 추산했고 앞서 뉴욕타임즈는 1천명. 시청측은 그보다 적은 7-8백명 수준으로 보았다. 시위는 시청측이 지역내 점포들의 영업시간을 규제하는데 있어서 한인상인들을 차별하고 있다는데 반발한 것이었으나 당시 샌디 화버 시장은 이 시위가 인종문제가 아닌 비지니스와 관련된 것이라고 인터뷰에서 주장했다. 당시 상공회의소측은 시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시측이 주차 미터 시간을 늘려 샤핑객들에게 불편을 주었으며 때로는 주차에 대한 과잉단속, 간판 규제, 한인경찰 채용 요구 묵살, 공청회에서 공개적으로 한인들을 매도한 일등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었다. 이런 불만들이 쌓여 상공회의소장과 샌비 화버 시장간 감정직인 대립을 보인적도 있었다.
시위가 있기 전 한인이 운영하는 노래방 세 군데와 식당 한 군데가 시를 상대로 영업시간을 24시간으로 연장해 달라며 주법원에 소승을 제기한바 있으며 재판에서 조나단 해리스 판사는 그리스계가 운영하는 다이너는 오래전부터 실시해오던 그랜드파 룰을 적용해 24시간 종전대로 오픈하되 한인 노래방 세 곳과 식당은 새벽 3시에 문을 닫고 6시에 오픈하라고 판결했다. 단 한인업소에 그동안 물려온 거액의 벌금은 면제해 주는 조건이었다. 이에대해 시측이나 상공회의소 측은 서로가 이긴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것이었다. 주최측에 의하면 시위는 소송에서 승소한 것을 동포들에게 보고하는 일종의 소송보고회의 성격을 띠었다고 말했다.
시위에 앞서 찬반여론이 있었다. 한인들을 만만하게 보는 시측에 무언가 본보기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압도했고 일부에서는 과격한 시위 보다는 시측과 협상을 해야 한다는 온건주장도 있었으나 결국은 11월24일 낮 팰리세이즈파크 중심부인 브로드 애비뉴 일대에 시위대의 물결이 뒤덮였다. 지역상인, 한인회 멤버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플러싱, 맨하탄 등지에서 단체로 버스를 타고 온 동포들도 있었다. 뉴저지주내 대학 재학생들도 그룹을 지어 모여들었다. 그리고 시위는 2시간반만에 평화롭게 끝났다. 이날의 시위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게 나타났다. 잘했다. 한번쯤 미국인들에게 한국인들이 뭉칠수 있다는 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우리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점을 보여주었어야 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었던 반면 시청측, 또는 주민들간에 한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될 것을 우려하는 조심스런 시선도 있었다. 이로인해 팰팍시의 한인 교육위원, 시의원 배출이 4-5년 늦춰졌다는 결과론도 제기됐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그간 샌디 화버 시장은 타계했고 주민들간에 아직도 네거티브한 분위기가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팰리세이즈파크에는 두명의 한인 시의원을 비롯, 교육위원, 조정위원, 헬스 보드, 도서관, 경찰관등 15명 정도의 한인들이 진출해 있다. 전체 시청직원 60명의 25%에 해당하는 인원이다. 총인구 2만의 도시에 9천명이 한인이고 1천4백명 정도의 한인 유권자가 투표에 참여
하는 상황에서 만족할만한 진출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간에 이룬 변화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이타운이 그간 한인들이 일구어놓은 활발한 상가에다 한인들에 의해 부동산 붐이 일었고 타운의 자산가치가 올라간 것도 사실이다. 두플렉스를 중심으로 살만한 주택들이 신축되면서 타운의 면모를 바꾼게 사실이고 지금도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이제 남은 일은 언젠가 한인시장이 선출되어 이타운을 미국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활기찬 명품도시로 만들어야 하는 과제이다. 낙후된 이지역에 깜작 놀랄만한 도시계획을 실천하고 행정적으로도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가능하다면 한국기업도 유치해서 활기찬 상업도시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타운 싸이즈가 1,2 스퀘어 마일로 비교적 작기 때문에 실현성도 높아 보인다. 그래서 한국인들이 조성한 명품도시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전국 각지의 행정가들이 찾아오는 그런 타운을 만들어야 할것이다. 그와같은 매스터 플랜을 가진 한인 지도자가 하루속히 이타운에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팰리세이즈파크 시위 현장
시위를 보도한 당일자 뉴욕타임즈 기사
■시리즈를 마감하면서
"이국땅에서 값진 경험 증인들 소개할 수 있어 보람"
지난 2008년 11월에 시작해서 2010년 5월에 끝을 맺으니까 꼭 1년 6개월이 걸린 셈이다. 연재 80회라면 길지도 않지만 짧지도 않은 길이다. 언론인으로서 외길을 걸으며 기록상 필요에 의해 한인 이민사에 손을 댄지 30년이 넘었다. 먼 옛날의 역사는 관련 서적들을 구해 읽고 손에 닿는 근대사는 역사속의 인물과 현장을 직접 찾아 발로 뛰는 작업을 한지 오래다. 그곳이 하와이라도 찾아갔고 LA, 샌프란시스코, 서울까지도 찾아가 생생한 이야기들을 빼놓지 않고 주어 담았다. 언론인이어서 가능했고 그것이 바로 언론인의 가는 길이 아니겠는가. 때로는 주인공을 인생의 마지막 시점에서 만나는 요행도 가끔 있었다. 그로인해 한국의 국사편찬위원회와도 인연이 닿았다.
운명적으로 조국을 떠나 타국땅을 헤맸던 그들에게는 나름대로의 소중한 스토리들이 있었다. 그것이 성공한 아메리칸 드림이든 미완으로 끝난 실패작이든 모두 들어둘만한 가치는 있었다. 그들에게서 공통점을 찾는다면 성공한 삶이나 실패한 삶이나 모두들 이국땅에서 값진 경험을 몸으로 체험했다는 사실이다.
80회에 달하는 이 시리즈에 등장한 인물들은 그와같은 값진 경험의 증인들이다. 동양문화가 서양문화와 만나 충돌하고 융합하고 수렴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갖가지 갈등들, 짧지만 숨김없이 노출된 사건들이 이 시리즈에 등장한 주제들이다. 역사적인 사건들을 다루다 보니 어느 시점에서 선을 그어야 되겠다는 생각에 2000년을 기점으로 했다. 이번 시리즈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사건들, 인물들, 지면 때문에 다 추스리지 못한 미진한 부분, 그리고 2000년 이후의 인물, 사건들을 언젠가는 또다른 인연으로 다룰수 있기를 바란다. 시리즈가 계속되는 동안 여러모로 격려해주신 독자 여러분과 이 연재를 가능케 해주신 신학연 발행인, 그리고 한국일보 편집진에 거듭 감사의 뜻을 전한다.
조종무<언론인. 한국 국사편찬위원회 해외사료 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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