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10년 동안 살았던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이곳 버지니아로 오는 도상의 탁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운전 중이라 옆에 있는 여자 친구분에게 얼른 전화기를 넘겼다.
“오랫만이에요!” 밝고 맑은 행복의 향기를 머금은 목소리다.
그녀와 탁 선배와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이야기 하던 중 그녀가 나에게 도반(道伴)을 이야기 했다.
석가에게 한 제자가 수행중 도반의 중요성에 대해서 질문하자 “도반은 30%도, 60%도 아닌 수행의 전부다”라고 석가가 대답을 했다고 한다.
도반은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좋은 길벗이고 친구이다. 도반은 관계이고 인연이고, 또 삶이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길벗에는 변함이 없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던 것은 거리에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는 몇 년 전 12월 초였다. 나는 아픔과 고통이 거리 골목마다 숨 쉬고 있는 이곳을 무작정 떠나고 싶었다. 일종의 현실 도피였다.
토니 베넷이 부른 팝송 가사(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처럼 내 사랑과 젊은 꿈, 그리고 그리움이 남아 있는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 티켓을 사서 길을 떠났다.
토요일 이른 아침이었다. 몇 마일 해변가 조깅을 마치고 온몸이 땀에 젖은 모습으로 탁 선배와 함께 호텔로 그녀가 나를 찾아 왔다. 그녀의 두 눈동자는 아침 햇빛에 번쩍거리는 해변 모래알처럼 빛나고 있었고, 그녀가 담아온 태평양 겨울 바다의 싱싱한 몸 냄새가 식당 안을 진동했다.
그녀는 어두운 그림자가 가득한 나의 얼굴을 쳐다보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나에게 우주 에너지(universal energy)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마음 속에 만나고 싶은 사람의 모습을 간절하게 그려 보세요. 그 간절한 마음이 우주의 기를 움직여서 인연을 한 구름 조각으로 몰고 온답니다.” 다닐 앙카가 쓴 “가슴을 뛰는 삶을 살아라”라는 책 속에 나오는 우주인 바르샤의 이야기였다.
나는 그 동안 그런 간절한 바람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매일 하늘을 쳐다보며 나에게 밀려 올 한 조각 구름을 꿈꾸어 왔다.
“나쁜 친구는 보름달처럼 시간이 갈수록 어둠을 더해 가는 인연이고, 좋은 친구는 초승달처럼 사귈수록 밝음을 더해가는 인연”이라고 한 부처의 가르침에 나오는 초승달 같은 인연에 대한 바람이고 소망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던져준 화두 ‘도반’을 생각하며 새벽 숲 속을 찾았다.
버지니아 숲 속은 불가에서 말하는 눈, 귀, 코, 혀, 몸, 마음 등 여섯 가지 도둑들이 없는 나의 영원한 도반이고 벗이다. 집착이 없기에 늘 청정(靑情)하기만 하다.
숲 속의 꽃과 나무들, 새소리, 흐르는 강물에는 목적이나 동기가 없다. 생과 죽음의 구분이나 사랑과 미움의 구분 같은 것도 없다.
꽃향기처럼 순간순간 풍성하게 존재하는 삶만 있는 것이 숲이다.
도반, 길벗 꽃향기와 같은 것이다. 해부하고 분석할 수도 없고, 목적이나 동기도 없는 존재다. 목적이나 동기가 있을 때 그 향기는 흩어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길벗은 죽음의 탄산가스를 들이마셔 생명의 산소를 내뿜는 저 나무들의 숨결과 같은 것이다.
사랑이라는 언어나 관념이 없는 실존일 뿐이다.
빌 박
버지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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