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쿠 Haiku
취해서 자련다
패랭이꽃 피어난
바위에 누워
마츠오 바쇼의 하이쿠다.
이민생활 무심해서 그나마 꽁꽁 쟁여둔 오징어도 제때 먹지 못한다. 해 넘겨 마르다 못해 굳어 버린 한 쪽을 온 종일 물고 있어도 바다 내음이 그리울 뿐이다. 내게 있어 그 오징어가 하이쿠다. 잊고 있다 느닷없이 만나 또 며칠을 품게 되는 그리움이다.
하이쿠는 일본의 짧은 정형시다. 그리고 유행가 하이쿠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린 이가 17세기 마츠오 바쇼다. 하이쿠를 알게 된 건 민음사 세계시인선에 바쇼의 책이 나와서였다. 1998년, 스물 일곱 이었다.
미국 와서는 잊고 지냈다. 우연히 미국인 대학원생한테 고등학교에서 하이쿠를 배웠다는 말을 듣고 놀랐었다. 2년 전 일이다. 그러고 보니 미국 문인들 가운데는 하이쿠를 짓는 하이진이 많았다. 비트 문학의 선구자 알렌 긴스버그도 그랬다. 그리고, 다시 하이쿠를 보게 된 건 아이들 동화책에서다. 존 뮤스의 그림책을 좋아하는데,
에 있었다.
다시 만난 하이쿠에서 참 재미있는 발견을 했다. 계절에 대한 느낌이다. 전통 하이쿠에는 꼭 계절을 알리는 계어(季語)가 나온다. 위의 시에서는 여름을 알리는 패랭이꽃이었다. 8년 전, 미국에 처음 와 봄처럼 싱싱한 겨울과 흔한 동백을 보며 어리둥절했었다. 이제는 타국 생활이 익숙해 졌는지 바쇼의 한 줄 싯구에서 귀한 발견을 했다.
올들어 첫 참외
네쪽으로 쪼갤거나
통으로 자를거나
그리움 때문에 사게 되는 한국 참외를 보고 망설여 본 이가 나만은 아닐거다.
방랑에 병들어
꿈은 마른 들판을
헤매고 돈다
누런 동산이 황토가 아니라 마른 풀이라는 것을 알면서 켈리포니아 벨리의 마른 여름을 배워야 했다. 이 시의 마른 들판이 17세기 그 곳에서는 겨울이었지만 여기 새크라멘토에서는 이제 여름이라는 걸 재차 알게 해줬다. 세 줄짜리 시라도 있어 넉넉하다.
필자의 요청사항:여백을 살리기가 어려우면 하이쿠 한 줄 끝나고 빗금으로 구분 하셔도 됩니다. 다만 하이쿠 앞 뒤로 한 줄 여백을 남겨 주셨으면 합니다.
제 후진 글보다 시 한 줄 전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거 같아서요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