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아버지가 삽과 괭이 들고 땅을 파거나
낫 세워 풀 깎거나 도끼 들어 장작 패거나
싸구려 담배 피며 먼 산 바라보거나 술에 져서
길바닥에 넘어지거나 저녁 밥상 걷어차거나
할 때에, 식구가 모르는 아버지만의 내밀한
큰 슬픔 있어 그랬으리라 아버지의
큰 뜻 세상에 맞지 않아 그랬으리라
그렇게 바꿔 생각하고는 하였다 그러지 않고서야
아버지의 무능과 불운 어찌 내 설움으로 연민하고
용서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날의
아버지를 살고 있는 오늘에야 나는 알았다
아버지에게 애초 큰 뜻 없었다는 것을
그저 자연으로 태어나 자연으로 살다 갔을
뿐이라는 것을 채마밭에서 풀 뽑고 있는 아버지는
그냥 풀 뽑고 담배 피우는 아버지는
담배 피우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늦은 밤 멍한 눈길로 티브이 화면이나 쫓는
오늘의 나를 아들은 어떻게 볼까
이재무(1958 - )
아버지날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조용히 지나가야 제격이다. 아버지날은 아버지가 그냥 아버지였으며 오늘의 나처럼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날이다. 무능하고 불운한 아버지가 못난 자식을 위해 자신의 삶을 묵묵히 지고가신 것을 기억하는 날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경건하게 반성하면서 지내게 되는 그런 날이다.
김동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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