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세월은 가고 있다. 2000년 10월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이삿짐 박스에 넣고는 까맣게 잊어 버렸던 벽시계. 차고 한구석에 10년 동안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박스.
대대적 차고정리 중 하마터면 쓰레기차에 실릴 뻔했던 찰라, 극적으로 구출(?)되어 차고 구석에서 벗어나 거실 정면 벽에 걸리는 영광(?)을 누리고 있으니 복을 타고 난 벽시계가 아닌가. 멈추었던 벽시계는 째깍 째깍 아무 이상 없이 초침을 돌리며 흑백 필름처럼 아득한 추억의 공간을 채우기 시작한다.
20년 전 큰 시누이가 이민 오면서 선물로 가져 온 시계였다. 시누이 부부는 흐르는 세월 속에서도 한결 같이 성실한 분들. 젊은 시절 초등학교 선생으로 어린 딸과 아들을 데리고 벽촌에 들어가 문맹퇴치에 헌신적인 열정을 바친 교사부부였다.
벽지 어린이들을 위한 모범적인 교육열이 널리 알려지며 문교부에서 주최한 상록수상 수상 부부였으며 KBS TV 드라마 ‘벽촌에서 꽃피운 상록수 부부’(1970년) 주인공들이다.
부부는 몇 년 후 서울에 있는 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그리고는 몇 달이 지났을 때 7세된 아들이 맹장수술을 받던 중 병원의 실수로 그만 천국으로 갔다. 아들을 잃고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방황할 때 환경을 바꿔보라는 주위의 성화에 고민하다 이민 길에 올랐다.
친지의 소개로 잡화상을 시작해 힘든 노동 속에 이민생활 10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장강도가 침입했다. 강도는 시커먼 복면을 쓰고, 구둣발로 목을 짓누르며 잔인하게 돈을 털어갔지만 다행히 목숨은 구할 수 있었다.
그 끔찍한 상황을 겪고 나니 부부는 만정이 떨어져 미국생활을 접고 역이민을 하고 말았다. LA 새 동네의 아담한 새 집에서 펼쳐 보려던 꿈과 미국생활 10년 세월을 붙들지 못함은 안타까움이었다는 시누이 부부.
패잔병(?)으로 돌아간 고국은 낯설었지만 다행히도 초등학교 교사 자리를 얻어 천직에 감사하다 이제는 은퇴를 맞았다.
주인에게 완전 외면당한 채, 감금(?) 10년의 세월을 확실히 털고 초침과 시침을 정확히 맞추며 해방의 기쁨을 알리듯 ‘땡~앵’ ‘땡~앵’ 큰소리치는 신통한 벽시계.
투박한 벽시계를 바라보며 잊고 지냈던 시누이의 정을 그리며 쉼 없는 사랑의 시계초침 속에서 그들 부부가 늘 평안한 노년의 삶을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유설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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