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팀
‘대~한민국’ 구호를 모르는 한인은 드물 듯 싶다. 지난 6월 월드컵 대회 때 수백명이 한 자리에 모여 한국팀을 응원하며 ‘대~한민국’을 연호했다. 한달전 시페어 퍼레이드 도중 ‘어가행렬’이 시애틀 다운타운을 지날 때도 연도관중 속에서 이 연호가 조그맣게 들렸다.
‘대~한민국’을 혼자 외치는 건 좀 쑥스럽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호응보다 눈총을 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여럿이 함께 외치면 신바람이 난다. 일체감과 동류의식이 저절로 발동하기 때문이다. 월드컵 응원 땐 한인들 사이에 낀 미국인들도 덩달아 ‘대~한민국’을 외쳤다.
오래전 필자가 잠깐 하와이에서 일할 때 LA에서 처자가 방문했다. 마침 이충희가 이끄는 한국대표 농구팀이 호놀룰루에서 군부대 장신선수들을 상대로 전지훈련 경기를 벌여 당시 11세였던 아들을 데리고 구경 갔다. 한참 한국팀을 응원하다가 아들을 보니 그 녀석은 미국팀을 응원하고 있었다. 자기는 미국에 살므로 미국팀을 응원해야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인들의 홈팀 성원은 유별나다. 매리너스 야구모자를 쓴 사람들이 시애틀 거리를 누빈다. 워싱턴대학과 관계없는 사람들도 ‘W’자 스티커를 자동차에 붙이고 다닌다. 시혹스가 홈경기를 벌일 땐 스페이스 니들에 ‘12’자가 새겨진 대형 깃발이 나부낀다. 시민 모두 12번째 후보선수가 돼 시혹스를 성원하자는 뜻이다. 시혹스 홈구장인 퀘스트 필드는 방문팀을 기죽이는 홈팬들의 함성이 전국에서 가장 요란한 구장으로 꼽힌다.
시민들의 뜨거운 성원을 받는 홈팀은 대개 전적이 좋다. 또 홈팀의 전적이 좋으면 시민들의 성원도 뜨겁다. 뉴욕과 양키스(야구), LA와 레이커스(농구), 달라스와 카우보이스(풋볼)가 좋은 예이다. 그러나 시애틀에선 이런 공식이 성립되지 않는다. 시민들의 뜨거운 성원 열기에도 불구하고 주요 홈팀들이 하나같이 몇 년째 죽을 쑤고 있다.
특히 지난 2008년은 절망의 해였다. 시애틀에 41년간 둥지를 틀며 시애틀 프로구단 중 유일하게 전국 왕좌에 오른(1978년) 수퍼소닉스 농구팀은 그해 오클라호마로 팔려가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로 둔갑했다. 소닉스를 붙들지 못한 그렉 니클스 시장은 작년 3선에 도전했다가 예선에서 탈락했다. 시혹스는 2006년 수퍼보울에 진출해 홈팬들을 열광시켰지만 2년 뒤 고작 4승을 거뒀고 작년에도 5승에 그쳐 스페이스 니들의 ‘12’ 깃발을 무색케 했다. 명코치 마이크 홈그렌도 자진 은퇴했다. 서부지역에서 전통적인 대학 강자로 군림해온 UW의 허스키스도 2008년엔 시혹스 형들을 닮았는지 12전12패의 망신스런 기록을 남겼다.
매리너스는 만년꼴찌다. 2001년 이후 한 번도 플레이오프에 진출 못했다. 2008년엔 선수연봉으로 1억달러 이상을 쓰고도 100패를 당한 첫 메이저리그 팀이 됐다. 루 피넬라 이후 감독이 5년간 여섯 번이나 바뀌었지만 나아진 게 없다. 한물 간 켄 그리피 Jr.를 데려오고 젊은 추신수를 방출했다. 그리피는 2년만인 올해 자의반타의반 은퇴했고 추신수(클리브랜드)는 4년만에 모든 팀이 탐내는 스타 우익수가 됐다. 신진선수 영입 대신 이치로 스즈키에게 지나치게 의존한다. 전체 선수연봉의 5분의1(연간 1,800만 달러)을 그에게 몰아준다.
그러나, 어쩌랴. 매리너스는 곱던 밉던 시애틀의 홈팀이자 서북미 유일의 프로 야구팀이다. 전문가들은 매리너스의 10년 부진이 바닥을 친 것으로 진단한다. 팀 재구성이 끝나는 2년 후부터는 상승기류를 탈 것이라며 이런 때일수록 홈팬들의 성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홈팀 매리너스가 30일 세이프코 필드에서 맞수 애너하임 에인젤스와 경기를 벌인다. 특히, 이날 게임은 한국일보와 매리너스가 매년 공동주최하는 ‘코리아 나이트’ 경기이다. 자녀들과 함께 관전하며 ‘매~리너스’를 연호하자. 그것이 자녀들에게 ‘홈팀 사랑’을 심어주고 주류사회에의 동화감과 일체감을 길러주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윤여춘(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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