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영국의 스티븐 호킹은, 9월 9일 그의 저서 “위대한 설계(Grand Design)”에서 매우 의외의 주장을 해서 과학계와 종교계에 큰 화제를 던져주고 있다. 이것은 과거의 그의 저서 “시간의 역사”에서 말한 - 만약 우리가 완전한 이론을 발견하게 된다면 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 일종의 간증에 비하면, 매우 무모한 교만이라고 볼 수 있다. 상대성 이론을 창시한 알버트 아인슈타인도 한 때는 “내게 신이란 단어는 인간의 약점을 들어내는 표현의 산물”이라고 했지만, 또 언젠가는 “인체의 구조와 우주의 신비를 알고도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천치 바보이거나 미친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호킹의 새 책에서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태양계가 우주의 유일한 존재가 아니다”라는 점이라고 한다. 이미 인류는 수세기 전부터 태양계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우주물리학적 사실과, 성경에서 말하는 창조론과 예수의 “성수태고지”의 발생학적 사실, 예수의 수많은 이적과 기적이 모두 신앙적 믿음(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으로 극복되고 있음을 잘 알아 온 것이다. 우주의 탄생(빅뱅학설)이 과학적으로 중력의 법칙으로 설명되고, 정자와 난자의 존재에서부터 ‘인간창조’의 역사가 증명되는 단계와 과정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과학적 연구결과에 의해서 알게 되는 것뿐이고, 왜 우주가 탄생되었고, 왜 인간이 창조되었는지 그 목적과 의미는 설명해 주지 못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무신론과 유신론의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절충할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영국 성공회의 로완 윌리엄스 캐터베리 대주교는 “물리학 자체만으로는 왜 무(無)가 아닌 무엇인가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는 결코 해답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예를 들면, 못된 자식을 끝까지 사랑하는 어머니의 사랑을 물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영국의 유대교 지도자인 랍비 조나단 헨리 색스경은, “과학보다 더 큰 지혜도 존재한다”고 하였으며 우리가 존재하는 양식(과학)보다 존재하는 목적(시와 소망)이 더 중요하다도 볼 수 있다.
첫 번째 시인(詩人)은 하나님(신, 神)이시다. 왜냐하면 태초에 하나님의 말씀(言)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씀은 곧 무가 아닌 유이며, 무의미가 아니라 유의미이며,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눈에 안보이지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박사의 말씀처럼, 우주의 구조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인체의 구조를 보고, 그 기능과 생리의 목적을 유추할 수 있듯이 말이다.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면 바람이 보이고, 지남철 밑에서 못이 춤을 추면 자력이 보이고, 어머니의 눈물을 보면 어머니의 사랑이 보이듯이, 스티븐 호킹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면 그의 어머니의 사랑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성의 클라우디우스 갈레노스(C. Galen)는 “Nature does nothing in vain(자연이 하는 일 치고 헛된 것은 하나도 없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작품 자연, 곧 우주만물과 사물은 무의미한 것 헛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스티븐 호킹도 예외가 아니다.
오영근
은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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