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살이 차츰 눈부셔가는 지난 해 4월 어느 날 병상의 오빠를 위로하며 찾았던 날이 있었다. 그 후 일 년을 넘긴 불볕더위 한여름 날 공허하고 시린 가슴을 안고 오빠가 남긴 한줌의 재가 담긴 벽제 중앙추모공원의 납골당을 찾았다. 납골당이라 세상에서 불리는 곳. 살았을 때 누군가의 따뜻한 사람이었으며 우리와 함께 이 세상에 머물렀던 분들이 간 곳 모를 죽음처럼 한줌재로 잠자는 그곳. 생전 처음으로 안치실에 들어간 순간 좁은 공간에 수천 명의 유골함들이 모셔져 있어 묘한 기분이 들었다.
온가족이 함께 환한 미소지우며 마지막으로 남긴 사진 2장과 함께 납골당에 비치해 놓은 항아리에 오빠의 이름을 보는 순간 울컥 희미한 기억 속으로 사라진 과거가 떠올라 마음이 애잔해져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누구나 가는 길 먼저가나 늦게 가나 하는 차이밖에 없으니 슬퍼할 것도 없다고 했건만 한줌 밖에 안 된 모습으로 항아리에 담기어 벽 한켠의 조그만 유리 사각형 안에 들어가 장식물처럼 놓여 있음에 기가 막힌다.
마치 산자들한테는 쾌적한 환경으로 죽은자들의 권리(?)보다는 산자들의 권리를 위해 제공 되어진 선진미래형 유골함의 아파트(?)같은 곳. 눈높이에 위치한 오빠 항아리가 담긴 유리벽을 만지며 생전의 못다한 사연이 얼마나 많았는데 그 기세등등함을 어떻게 하고 이곳에 그것도 한줌의 재로 담긴 항아리 전시장(?)에 한몫을 차지하고 “이제 왔니, 정말 반갑다”란 한 마디의 인사도 건낼줄 모르는 처지가 되었는가 말이다.
죽은 자들을 돌아다보았다. 그곳엔 백수를 누리고 떠난 사람도 있었고 미쳐 펴보지도 못한 십대 이십대 아니 2살, 3살의 죽음도 있었다. 세상 뜨는 것은 나이도 성별도 아무것도 고려됨 없이 인명은 재천이라는 단순한 진리가 가슴에 와 닿는다. 살아있을 때는 다들 천년만년 살 것처럼 아둥바둥이지만 갈 때는 저렇게 한줌의 재로 남는 게 인생인데, 인간은 자신이 죽는다는 만고의 진리를 잊고 사는 현실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게 우리네 인생인 것 같다.
삶과 죽음은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주신 길은 두 갈래 길, 삶과 죽음이라고도 하지만 왜 이렇게 첩첩히 쌓인 무수한 사연들은 가슴 아플까. 바깥 세상은 화려하게 춤을 추는데 죽음 그 이후에 이르러서는 왜 이렇게 고요하고 쓸쓸한 걸까. 한 세대가 흔적도 없이 세월 따라 흘러가면 그 많은 사연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시작이 있었으니 끝도 있을 것이고 그렇게 사람도 자연도 온천지의 우주만물이 순환하는 가운데서 인생은 너무 짧고 안타까울 정도로 아쉬운 것은 그래서 인생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일까.
나그네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죽은 자는 말한다. “너무 그렇게 힘들게 살지 말고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무엇이든 너무 애착을 가지지 말라고. 그리고 평온한 마음가짐으로 서로들 사랑하며 살다 뒤따라오라고.”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파스칼의 명언을 굳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생각하는 일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준다. 마지막 순간 마음의 짐이 되어 가슴을 후벼판다면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건강할 때 내일 죽을 것처럼 열심히 노력하며 후회 없는 멋진 인생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유설자
워싱턴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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