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미국에 연수를 온지 1년이 넘었다. 그간 이런저런 사람을 많이 만났다. 대개 이민을 온 분들이 많았다. 보통 20년이 넘은 경우가 많았다. 10년 되었다면 아직 적응하는 기간쯤 되는 듯 했다. 1년 만에 자세하게 알 수 없으나 그간 만나본 남자들의 인생은 2가지로 분류되는 것 같았다. 그 사례를 본다.
K형은 이민을 온지 15년이 넘었다. 그간의 인생굴곡이 많았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살았다. 한국에서 좋은 대학을 나와 한때 좋은 인생을 살았으나 이민을 온 후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건설회사 들어가서 아스팔트 공사일도 해 봤고, 통신회사에서 케이블 설치,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입사하여 아파트 청소와 관리 등 닥치는 대로 했다. 때로는 직업이 없이 6개월을 놀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아내의 직업으로 살아간다. 지금은 친구가 운영하는 차량 렌트 회사에 들어가 영업일을 하고 있다.
이제 나이도 40대 중반을 넘어섰다. 그간 열심히 살았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버텨왔다. 그래도 젊음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앞으로가 큰일이다. 언제까지 이런 일 저런 일을 닥치는 대로 해야 하나? 일을 새로 시작하기에 언제나 초짜이다. 그러니 받는 보수도 얼마 되지 않는다. 그 돈으로 가족 4명이 살아가는 게 신기하다. 어쩌면 미국이기 때문에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한국에는 애들 학원비 때문에 그 돈으로 살아 갈수가 없는데. 이제 곧 50대가 될 텐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할까? 닥치는 대로.
한편 L형이 있다. 이 분도 한국에서 좋은 대학을 나와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있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이민을 왔다. 벌써 17년째이다. 처음 5년간은 정말 힘들었다. 우선 영어가 잘 되지 않아 고생이 많았다. 그래도 계속 공부를 했다. 전공인 회계분야의 일에 집중 하려고 했다. 하지만 길이 잘 풀리지 않았다. 그래도 그 분야를 끊임없이 파고들었다. 드디어 6년째 되면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회계 관련 회사에 입사했다. 하지만 영어 못한다고 무시를 당하기도 하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없는 트러블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도 버텼다. 오로지 일로서 성과를 보여주려고 했다. 이런 그의 노력은 3년이 못가 회사에서 빛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자기에게 참 못되게 굴었던 상사는 이제 자기 부하가 되어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은 임원으로 있다.
두 분의 인생을 보면서 왜 이렇게 서로 다른 결과의 인생을 사는지를 생각한다. 남자의 인생은 일로서 완성된다. 남자만이 아니다. 여자도 마찬가지다. 자기 속에 잠재된 능력과 열정을 표출할 수 있는 직업을 찾고 성과를 맛볼 때 인생의 꽃이 핀다. 이민 온 후에 K형도 L형처럼 살았어야 했다. 닥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목적이 있는 인생, 자신의 재능에 적합한 일에 집중했어야 했다. 때로는 길이 없어 보이고, 더디게 보여도 10년만 보내면 세상의 그 어떤 일이라도 꽃을 피우는 법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이 있다. 한 분야에서 하루 3시간, 일주일 6일, 10년 동안 갈고 닦으면 월드 클래스가 된다는 법칙이다. 한국에도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말이 있지 않은가? 그 3년이 세 개가 모이면 10년이 된다.
K형, 지금이라도 한 우물을 파시는 게 어떨까요?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늦다고 생각할 때가 바로 시작할 때라고 했습니다. 지금부터 형이 살아온 인생에서 가장 가슴 설레었던 일을 찾아서 그곳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야 남은 50대 중반 이후의 인생에 꽃이 필 것입니다. 이민자의 삶에 모델이 되어 보는 것입니다. 다른 곳에 파랑새가 있는 게 아닙니다. 쓰러진 바로 그곳에 있습니다.


이경만 /맥클린,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