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은 무언가 아쉬움을 주는 달이다. 열정의 계절이 그 등을 보이며 애잔하게 떠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봄을 보낼 때는 덜 하지만 여름을 보낼 때는 세월의 흐름을 눈으로 감지한다. 하여 달력에서 8월을 접고 9월을 맞이할 때는 기분이 조금은 스산하기 까지 하다.
그러나 10월은 어떤가. 9월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있다. 9월에 느꼈던 세월의 무상함 대신에 익어가는 가을로 이미 들어섰다는 체념 섞인 설렘과 꺾어진 한 해의 출구를 저만치 의식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10월의 길에서 어느새 처연한 듯 높아진 하늘과 떼 지어 날아가는 철새들, 뭉클거렸던 색깔을 버린 나무와 그 잎사귀들을 바라보는 노스탤지어가 가슴으로 흐른다. 빨간 머리 앤은 말했다. “이 세상에 10월이 있다는 건 대단한 축복입니다. 만약 9월에서 곧장 11월로 넘어가 버린다면 얼마나 시시할까요.” 그럴 리는 없지만 10월을 빼버리지 않은 하나님께 감사한다.
예로부터 10월을 상달이라 했다. 상달이란 으뜸이라는 뜻이다. 농사를 짓는 백성들에게 10월은 한 해의 결실을 마무리하는 달이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지 않는 현대인들에게도 농사 못지않은 상달의 의미가 10월에 집약 되어 있는 것 같다. 지나간 세월에서 무언가 부족함을 느낀 사람은 아직 남은 날들에 그 성취를 걸어야할 시간이며 많은 것을 수확한 사람은 그 것을 얻기 위해 잊고 있었던 감사와 보답을 작정하는 시간이다.
10월의 색은 갈색으로 통한다. 갈색은 자연의 색깔이다. 자연이란 가감 없는 자아를 성찰하며 창조주 앞에 나를 두는 모습이며 그 자연스러움이 내 삶의 주제임을 깨닫는 시간이다. 한때 리처드 칼슨의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가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내용은 차치하고 제목이 주는 뉘앙스가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여 일단 사고보자는 사람들이 많았고 유행에 민감한 한국인들에게는 성공적인 판매량을 기록한 책이 되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 이 책에 열광한 것일까. 그것은 진리였기 때문이다. 인간들의 삶이 그렇기 때문이다. 별 것 아닌 일, 정말 사소한 일로 웃고 우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 나 할 것 없이 작은 일 때문에 신경질도 나고 어이없기도 했던 추억들을 소유하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그렇게 작은 일에 매달렸던 못난 자신을 자책하고 자학하기까지 했다. “나는 정말 왜 그런 사소한 일을 잊지 못한단 말인가. 더 큰 일, 더 대단한 일도 많은데 이런 일로 속상해 하다니!” 하여, 사람들은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지 말라는 책 제목을 보고 거기 무슨 해결의 길이 있는가, 책장을 넘겼다.
그러나 그 책도 방법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 우리는 작은 일 사소한 일에 모든 것을 걸어야할 인생인지도 모른다.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지 못하는 위인은 결단코 큰일에도 목숨을 걸지 못하기 때문이다.
10월은 작은 나와 작은 내가 만든 인연과 관계들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자칫 계절에 취해 내용 없이 하루를 스치고 보낼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바로 그런 달이 10월이다. 너무 크게 생각하지도 말고 지나친 아쉬움에 치를 떨지도 말자. 어제 왔다가 오늘 가버린 날, 오늘 왔다가 내일 가버릴 날들을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10월은 의미가 있다. 작은 인연들을 매만지며 가는 날들이다. 그렇게 보내고 나면 갑자기 연말이라는 날들이 점령군처럼 들이닥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10월은 금세 떨어뜨릴 유리잔을 닮았을지 모른다. 더 소중하게 더 충실하게 진정한 상달이 되도록 천천히 소로(小路)를 걸어가는 길목이 되어야한다.
신석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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