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시들 것 없는 벌판 속으로
바람이 몰려간다 풍찬노숙의
쓸쓸한 풀꽃 몇 포기 아직도 지지 못해서
허옇게 갈대꽃 함께 흔들리는 강가
오늘은 우주의 끝으로
귀뚜르르 귀뚜라미 교신하는 가을의 끝머리에 선다
또 우리가 누릴 수 없어도 날들은 이렇게
흘러가고 흘러가리라
이마에 물결치는 강굽이 바라보며 눈썹 젖으면
캄캄했던 세월만 저희끼리
추억이 되고 아픔이 되고 한다
그러므로 소리 죽여 흐느끼는 여울이여
억새 가슴에 저며 서걱이는 빈 들판에 서서
이제 우리가 새삼 불러야 할 노래는 무엇인가
저기 위안 없이 가야 할
남은 길들이 마저 보인다
그러니 여기 잠시만 멈춰서라
김명인(1946 - )
그토록 오지 않을 것 같던 가을도 깊어 어느새 끝자락에 이르렀다. 마지막 풀꽃 몇 포기가 떨고 있는 강가에서 지난 계절을 돌아본다. 우리가 누릴 수 없었던 시간들이 제멋대로 흘러가버리고 추억과 아픔만이 억새 가슴에 저며 서걱인다. 저 빈 들판의 겨울 길로 위안 없이 걸어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면 무엇을 위해 서둘 것인가. 잠시만이라도 멈춰 서볼 일이다.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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