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스시맨 하나가 고국의 동해안가로 짧은 일정의 여행을 떠났다. 남양주를 거쳐 북한강 물줄기를 따라 동해로 내닫는 새 길들이 도(道) 경계마저도 허물어 버린 듯 많이도 뚫렸다. 인제의 내린천 깊은 계곡을 하늘높이 가로지르며 태산준령을 파헤치며 다가가는 춘천-속초 간 도로공사가 또한 목하 건설 중이다. 교량자재를 매달고 산등성이로 치닫는 헬기의 폭음이 지나는 객(客)의 상념을 깨곤 한다.
한계령의 내리막길, ‘필례’ 약수에서 광천수를 한 사발 들이키고 간성에서 옛날 같으면 그물에 걸린 고기가 버리기도 귀찮아했던 ‘곰치(물텀벙)’를 푹 고아 만든 해장국으로 아침을 대신했고, 대한 최북단 대진항에선 107개의 철계단을 딛고 올라선 등대꼭대기에서 북녘 땅 개골산의 희미한 봉우리도 보았고, 그 좋던 자태도 풍치도 다 사라지고 그저 낯설고 험준한 산세로만 보이는 겨울의 설악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발아래 펼쳐진 동해바다는 예나 다름없이 살아 숨 쉬며 그 맑고 싱그러운 바람을 뭍으로 뭍으로 불어주며 멀리서 온 객(客)의 심신을 달래주었다. 진부령 찬바람이 스쳐가는 계곡의 황태덕장은 러시아산 명태를 걸어 말리기 위한 겨울준비가 한창인데 수산청에서는 동해안에서 사라지는 명태의 양식을 위해 산란기 알밴 명태를 생포해 오면 거금을 포상한다고 했단다.
요즘 동해안은 복어, 쥐치, 가자미 세꼬시 등이 주(主)자연산 횟감인데, 제주의 그 유명한 ‘다금바리’를 동해안에서 양식해 이름 부쳐준 ‘능성어’가 최고의 맛이지 않은가 싶다.
지나는 길에 불타 재건중인 낙산사에 들러 숯덩이로 변한 대웅전 대들보 한 조각을 어루만지며 소원을 빌었고, 강릉의 휴휴암 불사에서는 바다를 등지고 세워진 거대한 관세음보살상의 먼 발치 벼랑 끝자락, 바닷물이 맞닿는 곳에 황어떼가 손에 움켜잡힐 만치 바글거리는데 방생의 자비를 베푸는 불심 앞이라 아무도 이 고기떼를 안 건드렸지만, 아마도 황어떼가 절을 떠나는 순간부터 길게 그물을 늘어트린 고갯배와의 사투는 시작될 것이다.
주문진항 어시장 근해에서 잡은 오징어(쓰루메 이까)가 수조마다 넘쳐나는걸 보면 지금쯤 울릉도 북단의 대화퇴(大和堆) 공동어장에서 조업 중인 오징어 선단들도 틀림없이 만선으로 돌아올 것이다.
내륙지방 인제 진동리 곰배령에 올랐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점봉산을 코앞에 둔 해발 1164m의 활엽수 원시림 및 희귀식물 자생지로 입산통제 지역인데 수정같이 맑은 이 계곡엔 천연기념물인 어름치, 버들치, 열목어가 서식하는 곳이다. 일찍 찾아온 어두운 창 너머로 산 아래 오지인 설피 마을의 산장 주인이 머루주 한 병과 넉넉치는 않지만 정갈하게 썰은 회 한 접시를 슬며시 드민다. 인적 드문 겨울날, 멀리서 찾아온 객(客)을 위해 주인은 두 눈 딱 감고 계곡에서 그물질을 한 것이다.
아마도 이 순백한 회 맛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서울의 스시집들이 제주 모슬포항에서 공수해오는 덩치 큰 방어를 가지고 이철 최고의 생선이라며 단골을 부르고 있다.
일본은 쓰루가(敦賀) 해협에서 잡는 혼마구로가 이철 최고의 생선일 테고, 우린 40㎝ 전후의 훈제 처리한 ‘하마찌’가 권할만한 때다.
다시 돌아온 스시바! 연말이 코앞이다. 우선 시장에 어떤 생선이 입하되는지 물어보자. 전통의 스시가 있으면 개발 또한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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