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지에 초록의 뭉게구름이 청춘의 꿈처럼 피어오르던 계절이 지나고, 단풍과 낙엽지는 가을을 넘어 차가운 12월 겨울밤이 깊어가고 있다. 이렇듯 세월의 흐름 속에 풍성한 삶의 향기로 이 세상은 은혜롭건만 앞서가신 오빠는 꿈에도 한번 볼 수가 없다.
갑자기 몸의 이상이 생겨 수술 후 의사의 처방을 한 치의 착오없이 10개월 긴 투병의 시간을 불안과 초조 속에서 항암치료에 희망을 걸었었다. 처음엔 빠른 회복의 기미로 온가족을 안심시키기도 했고 먼 곳 병원거리도 불사하고 열성적 열의를 보였는데 병은 그의 노력을 외면한 채 그토록 갈망했던 생명의 끈을 놓고 세상을 떠난 지 어느 새 일 년의 세월이 지나고 있다.
그 분은 억만년의 세월이 흘러도 변할 수 없는 우리의 피붙이 가족이며 살아서도 죽어서도 나와는 다정한 남매지간이다. 세상의 모든 오빠들, 아니 한국의 장남은, 그것도 가난한 집안의 장남들은 죄를 짓지 않고도 늘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거웠다. 부모와 동생들과 아내에게 죄인처럼 살아가는 장남의 사전에는 ‘변명’이란 단어가 없는 것인지 집안의 대소사에는 막강한 책임의 자리를 져야만 하는 외면키 어려운 장남의 임무를 수행하느라 무던히도 애쓰던 부모같은 오빠였다.
어린 시절 펑펑 함박눈이 내리고 논밭이 꽁꽁 얼어붙은 엄동설한에 오빠가 만든 썰매를 둘러메고 우린 추위도 잊은 채 어둑해질 때까지 얼음 위를 맴돌았고, 피난 시절엔 신문배달 소년으로 뛰어다니던 오빠가 좋아 쫓아다니느라 다리가 얼마나 아팠던지 모른다. 소학교 5학년 초 병치레로 엄청 고생하던 나를 다독거리며 업고 병원문턱을 드나들었던 다정했던 오빠. 더욱이 동생들을 자식같이 거두고 세월이 흘러 동생들이 사는 이곳 미국 방문 때면 골프장에 나가 파란 잔디를 함께 밟으며 저 멀리 하얀 공을 날리던 그 시절의 추억 보따리를 풀어놓으려면 끝이 없다.
맏아들을 둔 어머니는 끔찍이도 오빠를 좋아하시던 그 모습도 잊을 수가 없다. 아래로 딸 넷에 막내로 아들을 둔 어머니는 넉넉지 않은 가정을 꾸미느라 힘든 고생을 오빠가 있으므로 많은 위로를 받았으리라.
오빠는 어머니란 호칭은 거리감이 있다며 늘 아이같이 엄마로 불렀고 엄마를 위해서는 만사를 제끼고 달려오곤한 끔찍한 효자였다. 어린 날에도 마음껏 개구쟁이로 살아보지 못했을 장남인 오빠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그 대신 성실함과 진실됨으로 사회에서 모나지 않게 살고 있는 자식들이 하나같이 반듯하고 착한걸 보면 인간사 참 공평한 것 같다.
나이 듦에 대한 의기소침으로 우울해질 때 오빠가 고국에 턱 버티고 있어서 늘 마음 든든했었는데 지금은 “오빠! 나야 설자” 하며 수화기를 들어봐도 마음 털어놓을 오빠로 향한 그 전화선은 갈 곳을 잃었고 가슴 아리는 그리움의 슬픈 눈시울만 붉힌다. 오빠는 아버지를 많이도 닮았다. 친구와 술을 좋아하는 것, 가끔 주사가 있는 것까지도, 세상을 하직하는 날도 어쩌면 똑같은 70세의 나이로 왜 그렇게 서둘러 부모님을 만나러 가야만 했을까.
눈물의 깊은 강 건너 보이지 않는 그곳. 천국의 어느 이름 모를 화원에서 고락의 세월 그리며 꽃향기 속에 거닐고 계실 오빠를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오빠를 소리 내어 불러본다.
유설자
워싱턴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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