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화두는 언제나 복(福)으로 시작한다. “복 많이 받으세요” 또는 “행복하세요”라고 외친다. 웃기는 것은 자기 자신은 전혀 행복하지 않은 사람도 앵무새처럼 남을 보고 행복하라고 말한다.
그러면 모든 이가 선호하는 행복은 어떻게 오는 것일까. 사실 행복의 방문에는 왕도가 없다. 내가 취하는 자세나 태도가 어느 쪽으로 사는 인생인지를 파악하면 행복과 친한지 불행과 친한지 알 수 있다. 놀라운 일은 이런 얘기를 하는 나 자신도 행복 쪽보다는 오히려 불행이나 불만 쪽으로 익숙해져 있고 그것들과 친하게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의 위인 됨을 알려면 그의 친구를 보라는 말도 있지만 무엇이 내 옆에 사는가가 그만치 중요하다는 뜻이다. 자꾸 거짓이 보이면 거짓과 가까운 거리에 사는 것이고 게으름이나 권태나 교만 따위가 보이면 게으름이나 권태나 교만과 친한 삶을 산다고 보면 거의 틀림없다.
그러므로 불행 쪽에 익숙한 인간이 남을 보고 “새해에는 복 받으세요”라든가 “제발 행복하세요”라는 말을 한다면 그건 참으로 듣기 민망한 립 서비스다. 세상에 어느 누구도 자기가 갖지 못한 것을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해가 되면 이런 말 말고 무슨 인사를 교환 할 것인가. 내용은 없어도 들어서 나쁘지 않은 덕담 수준으로 ‘복’이라는 말을 주고받는다 생각하면 무리는 없다.
아무튼 내 자신이 먼저 행복해져야 한다. 새해의 복은 기다려서 오는 무지개가 아니라 내가 다가가야 할 산이요 강이다. “사람은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처럼 행복을 위해 내가 먼저 웃고 내가 더 가까이 가야 행복의 꼬리라도 만질 수 있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이미 행복을 끝장 낸 후 불행을 시작하고 있는지 모른다. 역설이지만 불행의 시작은 지나친 바쁨의 결과이다.
우리들 정서 속에는 별로 바쁠 것이 없는 데도 언제나 바쁘다는 타령에 익숙한데 그 ‘바쁨’ 때문에 행복을 보는 여유를 상실한다. ‘여유’는 한가함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군가 자기를 한가로운 사람이나 여유로운 사람으로 말하면 엄청난 죄책감을 갖고 그런 평가를 강력히 부인한다. 심지어는 백수도 바쁘다고 주장하기를 마지않고 독서와 집필, 기도와 묵상으로 영적 여유로움에 잠겨야 할 성직자도 얼마나 바쁜지 눈코 뜰 새가 없다고 강변한다. 여유란 무엇인가. 지고 가던 짐을 한번쯤 내려놓고 호흡을 가다듬는 ‘쉼과 느림’의 미학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기자가 물었다. “각하께서는 걱정스럽다거나 초조할 때는 어떻게 마음을 가라앉히십니까?” “휘파람을 붑니다.” “그렇지만 각하께서 휘파람 부는 것을 들었다는 사람이 없던데요.” “당연한 일입니다. 아직 휘파람을 불어본 적이 없으니까요.”이 유머를 보면 루스벨트의 여유로움이 잘 나타나 있다. 우리들 주변에는 조금의 틈도 없고 뚫고 들어갈 여유도 없는 사람이 있다. 얼핏 보면 원칙주의자 같지만 그 진면목을 살펴보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그런 사람일수록 사소한 일에 잘 허물어지는가 하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끝없이 관대하고 남에 대해서는 엄격한 경우를 목격한다.
다시 시작하는 새해의 경점에서 내가 먼저 행복을 만들며 살자. 세상살이가 힘들어도 조금쯤 여유롭게 사는 지혜로운 마음을 갖자. 여유가 없으면 감사도 없고 하늘을 올려다 볼 마음도 찾기 어렵다.
이 세상은 날숨과 들숨, 다시 말해 썰물과 밀물의 교차로 진행된다. 여유로움은 썰물과 같다. 밀물만으로는 살기 어렵다. 인생을 어렵게 생각하면 그 어려움은 밀물처럼 밀어닥치고 자고로 성공했다는 유명한 인물들을 보면 오히려 범인(凡人)보다 여유로웠음을 발견한다. 새로운 해를 살아야 할 시점에서서 조금만 더 한가로운 마음으로 새 날을 맞이하자. 그래야 불행을 잘 보내줄 수 있다.
신석환
목사 /실버스프링, MD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