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가 되면 많은 생각이 앞을 가린다. 젊음이 동백꽃처럼 정열을 뚝뚝 흘릴 때는 속된 노래를 부르고 있어도 희망은 내 것이었다. 그런데 황혼이 저만치 보인다 생각하니 마음만 바빠진다. 올해도 새해는 어김없이 시계의 초침처럼 째깍거리며 나에게 목표를 묻는다. 그 물음에 선뜻 답을 찾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왔던 길을 되돌아본다. 이리저리 굽은 어스름한 기억의 길목에 한 성난 눈길이 머물고 있다.
아마 삼십 년 전이었을 게다. 그때 나의 젊음은 열에 들뜬 동백꽃이 뚝뚝 떨어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동백나무 이파리처럼 당차고 푸르렀다. 당차고 푸르다는 포장된 표현을 다른 말로 하자면 뭣도 모르면서 도도했다는 말이다. 그 도도함이 서식하게 된 이면에는 이런 게 있었다. 이십 이인치의 날씬한 허리에 요즈음 유행하는 쌩얼과 같은 뽀오얀 피부. 그 당시 한창 유행하던 쌍거풀 테잎까지 동원해 만들어낸 동그란 눈. 물결 파마한 머리를 드라이기로 자그르르 하게 넘긴 헤어스타일은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를 따라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숏 다리 콤플렉스를 하이힐로 커버하고 나면 스스로 흡족했다.
그날도 나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나무랄 데 없는 하루였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낮에 친구로부터 S가 발목을 다쳤다고 들었다.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른 척 지나칠 수 있는 사이 또한 아니었다. 신호가 두어 번 떨어지자 S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어머, 발목이 부러졌다면서요?” 하고 물었다. 순간 이유모를 긴장감이 느껴졌다 싶었는데 벼락같은 호통이 귓전을 때렸다.
“무슨 말을 그 따위로 하는 거야?”
“…….???”
“그 말은 지금까지 내 발목이 부러지길 기다렸다는 뜻이야?”
“……!!?”
“발목을 다쳤냐고 물어야지 부러졌다가 뭐야? 말이라고 다 말이 아냐.”
찰칵. 뚜------. 오른손에 들려 있는 수화기는 무안함을 견디지 못하겠는지 뚜뚜뚜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그날 밤부터 나는 쌍거풀 테잎을 오려 눈을 동그랗게 만들지 않았다. 내가 나를 바라볼 때는 뽀오얀 피부와 동그란 눈의 나였지만, 타인이 바라보는 나는 내면의 울림이란 걸 알게 되었다.
어떤 이가 이런 말을 했다. 말은 악기를 연주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 입은 악기고 그 악기를 연주하는 건 우리 자신이다. 훈련되지 않은 연주자가 다루는 악기의 소리는 듣는 이를 불편하게 하지만, 절제된 훌륭한 연주는 감동을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다.
신묘년 벽두에 감동적인 연주를 위한 악보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말 한마디/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싸움의 불씨가 되고/ 잔인한 말 한마디가/ 삶을 파괴합니다./ 쓰디쓴 말 한마디가/ 증오의 씨를 뿌리고/ 무례한 말 한마디가/ 사랑의 불을 끕니다./ 은혜스런 말 한마디가/ 길을 평탄케 하고/ 즐거운 말 한마디가/ 하루를 빛나게 합니다./ 때에 맞는 말 한마디가/ 긴장을 풀어주고/ 사랑의 말 한마디가/ 축복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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