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마흔을 ‘불혹’의 나이라 했다. 예전에 아시는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마흔이 넘기를 손꼽아 기다렸어요. 그리고 지금 마흔이 넘으니 정말 좋습니다.” 그 말씀은 돌이 채 안된 첫 아기를 혼자 감당하면서 타향살이를 막 시작한 나에게 아주 매력적으로 들렸다. “아, 그 나이가 되면 내 이 힘든 시기가 끝나고, 모든 갈등도 사라지게 되는구나.”
그러한 생각이 들자 마흔이란 나이는 나에게도 거부하고 싶은 나이가 아니라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내 자신이 마흔 살이 넘은 지 이미 여러 해가 되었다. 그런데 기다리고 기다렸던 마음의 평화 혹은 모든 일들을 너그럽게 넘길 수 있는 여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나에게는 그런 근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고민은 나만의 고민이 아니었다. 얼마 전 통화에서 친정어머니는 칠순이 돼서도 세상의 미혹하는 것들에게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힘들다고 하셨다. “공자 왈 마흔이 불혹이라고 했던 것은 당시 사람들의 수명이 짧았으니까 그런 거야. 그때야 마흔이라면 천명을 다해가는 나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요새처럼 장수하는 세상에서 마흔은 한참 어린 거지.”
그렇게 결론을 내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불혹의 나이라는 것은 저마다 달라
지게 된다. 부단히 자신을 살펴보아 가다듬는 사람에게는 빨리 오기도 하지만 막연히 자연에만 맡기는 사람에게는 요원한 것이 아닐까? 게다가 나처럼 귀가 얇은 사람이 불혹의 경지에 이르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이리라.
문선희/ 번역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