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상 가는 커피집이 있다. 커피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친구를 만나 대화에 푹 빠지게 하는 곳이라 잘 찾는다. 그 곳에 가서 사람을 만날 때는 이미 기분이 반 정도는 잡혀있어 커피를 받아 들고 의자에 앉는 순간 바로 수다에 몰입하게 된다.
그러다 무슨 이유로 장소를 옮기게 되었다. 이름은 같은 커피집인데 다른 장소에서 만났다. 평소처럼 바로 분위기가 잡혀갈 줄 알았는데 뭔가 낯선 분위기 때문인지 주위를 둘러보며 적응하느라 횡설수설 생뚱 맞는 얘기들만 주고받았다. 깊은 대화 보다는 “네 아이 요즘 어떠니” 같은 겉도는 대화를 짜내다 헤어졌다.
밥 수저도 먹던 걸로 먹어야 소화가 잘 된다는 옛날 시골 할머니의 말에 그런 게 어디 있냐고 웃어댔던 기억이 있다. 엉덩이랑 무릎 부분이 밉상스럽게 밑으로 쭈욱 나와 그 옷 좀 입지 말라는 남편과 딸의 잔소리에 눈치를 보게 되지만 그래도 여전히 손이 가는 오래된 잠옷 바지가 있다.
때가 탄 채 매일 바닥에 굴러다니는 곰 인형이 어느 날 눈에 뜨이길래 맘먹고 버렸더니 다 큰 녀석이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인형인데 버렸다며 예상 밖의 심각한 반응을 보여서 쓰레기통을 뒤져 다시 꺼내 놨던 일도 있다. 그리고는 얼마 안 있다 다시 온 집을 굴러다니는 찬밥 신세가 되었지만.
평소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오래 다니던 곳이라, 또 오래 만져온 것이라 편안한 것들이 너무 많다. 다만 익숙함 때문에 그 고마움을 깨닫지 못하고 지나는 것 같다. 장소와 물건 뿐 아니라 사람 역시 그럴 것이다.
단골 커피 집이 나의 인생 이야기 집이 되어 준 곳이라는 사실을 몇 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깨닫게 됐다. 이런 것들을 하나 둘씩 떠올리다 보니 휑한 가슴이 점점 채워진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기억 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강정은/ 병원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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