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소리가 들린다. 한밤을 지새우며 산업을 나르는 화물열차의 기적소리다.
대부분 사람들은 하루의 일을 내려놓고 잠들었을 자정이 넘은 시간에 화물열차는 내일의 희망을 전하려 깜깜한 밤을 달린다.
행여나 가는 길에 꿈꾸는 꽃봉오리들을 깨울까, 어미 품에 잠든 다람쥐새끼들을 깨울까, 은은하면서도 길게 여울지는 기적소리가 잠들지 못하는 나의 영혼을 깨운다.
오늘 낮에 공원에서 손자와 함께 미니기차를 탔다. 은퇴한 할아버지들이 수년에 걸쳐 손수 레일을 깔고 신호기를 설치하고 터널과 다리를 만들었으며 나무와 꽃이 심어져있는 마을도 조성했다. “그랜마, 추추 트레인!” 신바람 난 손자와 기차를 타고 한 바퀴 돌아보는 동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햇살처럼 파란하늘에 부서졌다. 기관사 할아버지는 1마일 남았다는 이정표가 붙어있는 교차로에 다다라 속도를 줄이더니 힘차게 기적소리를 울렸다. 손자에게는 세상살이의 시작을, 인생을 살만큼 살아온 나에게는 인생종착역이 그리 멀지않았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어렸을 적에 인생길이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먼 길이라 생각되었다.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데 마치 내 고향집 가는 완행열차처럼 느리기만 했었다.
그러나 지나온 세월을 뒤돌아보니 내가 탄 기차는 완행열차가 아니라 급행열차였던 것 같다. 융단 같은 초록빛 보리밭 위에 노래하는 종달새와 들녘에 수줍게 피어난 제비꽃들과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지나왔다. 옥야천리 (沃野千里)가 드넓게 펼쳐져 있어도 고마운 줄 몰랐다.
이제는 수없이 지나온 길, 그 길에서 젊은 날에 듣던 소리와는 전혀 다른 기적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에게 꿈과 기쁨을 주려 고된 작업을 즐거이 하는 주름진 손길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황혼에 서 있어도 내일을 설계하는 그들의 참사랑이 기적소리가 되어 울린다.
요즘은 하루를 1440분이란 개념으로 살아간다. 촌각이라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는 마음에서다. 그런데도 아직 난 내 자신을 위한 일만으로도 벅차하니 언제 세상을 향하여 나의 굽은 손을 펼 수 있을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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