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아들에게 칼을 쥐어주고 싶지 않다 이렇게 화창한 봄날 묵정밭 갈아엎듯 자동식 연필깎기로 하루를 깎고 있다. 혼자 사는 친정어머니 팔순 생을 깎으신다 드르륵 몇 바퀴 돌리면 인생은 그만인 것을 선천성 제주의 여자, 드디어 몽당해졌다.
조영자(1958 - ) ‘몽당연필‘ 전문
시간이 이십대 때는 시속 20킬로로 가고, 70대에는 70킬로로 간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지만, 어렸을 적에는 칼로 연필 깎는 것처럼 가고, 나이가 들어서는 자동식 연필깎기로 연필을 깎는 것처럼 빨리 간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 몽당연필처럼 몽당해진 친정어머니의 시간이 그렇게 빨리 가버리는 것이 딸은 못내 안타깝다. 아버지, 어머니, 하루하루를 드르륵 돌려버리지 마시고 부디 칼로 천천히 천천히 깎아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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