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 자주 정연희의 화실을 방문해왔고 그림과 삶에 대해 얘기해 왔다. 절친한 친구인 그녀와 아주 깊이 ‘화가의 삶의 딜레마’를 이야기하고 서로의 고뇌를 경청한다.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람이 그리운 데도 절대적으로 혼자 있어야만 창조할 수 있는 스스로 선택한 고행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거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그림을 그려오면서 한 생을 다 바친 이 그림이라는 것이 과연 그럴 가치가 있는 것일까에 대해 얘기하기도 한다.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열정으로 그려 왔지만 결국 캔버스라는 물질에 불과한 그림 앞에서 일생을 보내는 삶에 대해 때로 느끼는 회의를 이야기하고 몇 십년을 그리면 이해 받을 줄 알았는데 더 깊이 더 멀리 떨어져 나가는 것에 대한 놀라움을 이야기 한다. 우리를 힘겹게 하는 일들에 대해 얘기하기도 한다.
팔릴 수 있는 그림만을 내 놓으라는 화상들과의 근본적으로 불편한 관계의 괴로움을 호소하기도 하고, 그리고 있는 그림에 대해 자세히 경청하기도 한다.
뉴욕, 멕시코시티, 메리다. 데스밸리, 준 레이크에서 그녀와 밤을 지새워 얘기하던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들은 서로가 이 삶에서 진정으로 무엇을 하려 했는지에 대해 깊은 신뢰를 지니고 있다.
심미안을 지닌 그녀의 집안 곳곳에서 그녀가 사랑하는 작가들의 그림의 탁월함을 발견하는 게 즐겁고 그녀의 작품 또한 여러 해 자주 감상해왔다. 그녀의 작업엔 언덕이 높아 바다 안개가 피어올랐다가 쏜살같이 사라지는 샌프란시스코의 변화무쌍한 대기가 물씬 느껴진다.
온 우주에 하트(heart)가 가득한 사랑이 넘치는 하트 시리즈가 특히 아름답고 다섯 번째의 계절이라는 작품 시리즈에 나타나는 고독하게 빛나는 작은 인간의 모습을 좋아한다.
물을 그리고 물고기를 그리고 별을 그리는 그녀의 새로운 이미지들이 그녀의 삶의 깊은 심층에서 창조되는 과정을 주시해왔다. 장엄하고 숭고한 자연과 우주의 한 가운데로 더 높이, 더 멀리 떠나는 듯한 빛나는 작은 형태의 인간이 그녀의 그림 속에 자주 나타난다.
달을 보는 사람, 지렛대를 올리는 사람, 구름에 휩싸인 사람, 그네를 타고 별빛을 향해 나는 사람 … 그녀의 그림에 나타나는 인간의 모습은 광대한 우주적 화면에 아주 작게 그려지는 데 염원, 도약, 초월과 해방의 상징적 우주 공간 속에 있다. 가까이에서 본 사람이 아니라 멀리 멀리 우주를 떠다니는, 우주를 안고 있는 사람이다. 그녀의 우주는 사랑과 초월의 상태로써 빛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별밭 속의 성당도면을 그리기도 하고, 그림을 천장에 늘어뜨려 매달아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이 다면적인 차원으로 전개되기도 하는 데 하늘을 올라가는 배의 날개<사진·’백야 - 보트’>, 비행기의 날개, 불빛 가득한 장엄한 강과 바다는 상상력의 광대한 차원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녀를 만나는 날에는 늘 공원 물가에 누워 하늘과 숲을 바라다본다. 오랜 여행에서 돌아와 새로운 그림을 시도한다고 하는 데, 물, 사다리, 계단, 불, 하트, 별밭, 성당, 나무 … 끝없이 이어지고 펼쳐지는 우주를 그려온 그녀가 다시 떠나는 우주에 어떤 상징들이 나타날 지 궁금하다.
박혜숙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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