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수요일인 10월1일, 제인 구달은 강연을 위해 방문했던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91세의 나이로 자연사했다. 그녀의 사망 소식으로 모든 매체가 한동안 뜨거웠다. 한국어와 영어의 공식 뉴스 매체가 일제히 특종 기사로 다루었고, 내가 들여다보는 소셜미디어 또한 구달에 대한 포스팅으로 가득했다.
제인 구달을 직접 만난 사람들은 인증샷을 올리며 슬픔을 표했고, 그녀를 만난 적은 없지만 연구를 수업 시간에 다루는 사람들(나를 포함하여), 그녀의 환경 운동과 인권 운동, 동물권 운동에 감화받은 많은 이들 역시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수많은 소감과 조의, 감동과 감사의 표현이 줄을 이었다. 그녀가 인류학에서 차지하는 위치, 아니 현대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컸다. 과연 온 세상이 슬퍼했는지, 맞춤형 알고리즘 덕분에(?) 나에게만 그렇게 보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제인 구달은 요즘 표현으로 하면 ‘슈퍼 인플루언서’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종인 침팬지를 연구하며 인류의 기원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종인 침팬지를 연구했으니 인류의 기원과 진화에 대해 중요한 업적을 남긴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제인 구달이 침팬지 연구를 시작한 1960년대는 지금과 매우 다른 세상이었다. 지금은 인류의 기원이 500만 년 정도로 생각되지만, 1960년 당시 정설에 따르면 인류의 기원은 1,000만 년 전이었고, 영장류 화석 프로콘술이 유력한 인류의 조상이었다. 프로콘술 화석이 동아프리카에서 발견되자 고인류학자 루이스 리키는 인류의 기원지가 아프리카였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유인원인 침팬지와 고릴라를 연구하여 인류의 기원을 밝히려 했다. 동물원이 아닌 자연환경 속에서 침팬지와 함께 살면서, 정규 교육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눈으로 관찰할 사람으로 자신의 비서였던 제인 구달을 보냈다. 그렇다. 연구자, 과학자, 학자로서 훈련을 거치지 않은 사람을 바로 그 이유로 침팬지와 함께 살게 한 것이다.
지금은 침팬지가 인간과 가장 가까운 종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1960년대 당시 이 문제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그러니 구달은 인류의 기원을 밝혀줄 중요한 존재로서 침팬지를 연구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의 얼굴을 잘 식별하지 못했던 구달은 동물에게는 특별한 열정과 교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열정과 끈기로, 대중에게 막연히 서커스 동물로만 알려졌던 침팬지에게서 그때까지 인간만의 영역이라 믿었던 행위를 하나씩 발견해 냈다. 침팬지는 도구를 만들어서 썼으며, 우정을 맺었으며, 대를 이어 집단적인 보복 살해를 저질렀다. 이렇게 관찰한 침팬지 행동을 학계에 보고했지만, 인정받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구달에게 침팬지는 연구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배우고 교감하는 친구였다. 그녀의 방법은 현대 영장류학의 기본이 되었다.
남성 중심적이고 어쩌면 여성에게 적대적이었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학계에서 예외적으로 영장류학은 많은 여성 학자를 배출해 냈는데, 그 초석을 구달이 다졌다. 구달은 영장류학에서 환경 운동으로 지평을 넓혔는데, 그녀의 환경 운동에는 희망의 메시지가 강하다. 그녀의 열정과 끈기는 70년 넘게 지속되어 숨이 다하는 날까지 계속되었던 것 같다. 구달이 침팬지와 함께하기 위해 곰베의 숲속으로 들어갔을 때, 10년 후, 20년 후, 60년 후 어떤 영향력을 지닌 거물이 될지 몰랐을 것이다. 단지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대신 동물과 쉽게 교감하던 자신이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갔을 뿐이었다.
구달은 지난 3월, 자신의 사후에 방영해 달라며 인터뷰를 녹화했다. 곧 넷플릭스에서 소개될 예정인 인터뷰의 녹취록이 공개되었다. 그녀는 여느 때처럼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지구의 생태계를 망친 책임과 지구를 살려내야 하는 엄청난 책임, 그리고 그 모두를 어우르고 이루어낼 수 있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시 한번 구달의 생애를 생각한다. 구달은 12년 의무 교육을 마치고 4년제 대학을 나와 5년 만에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알맞게 성과를 낼 수 있는 연구 주제를 잡아 학위를 따고 교수가 되는 길을 걷던 우리에게, 잠깐 멈추어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살펴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는 생계와 커리어를 생각해야 하지만, 가끔은 숨을 고르며 나를 움직이는 열정, 나를 움직이는 희망과 다시 만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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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UC 리버사이드 교수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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