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박 선교사는 울부짖었다.
미주한인교회연합(KCC)이 주최하는 횃불대회 강사로 초청된 박 선교사는 28일 필그림교회에서 열린 통곡기도회에서 북한 동족의 아픔을 한인들이 외면하지 말아줄 것을 절규하며 호소했다. 북한에서 풀려날 때 보았던 짧은 머리는 길게 자라있었고 큰 키에다 마른 체형때문에 셔츠와 바지가 어색하게 보였다.
박 선교사의 강연이 끝난 뒤 손인식 목사가 메뚜기와 석청(꿀)을 먹으며 약대 털옷에 가죽띠를 띠고 광야에서 외치던 세례 요한에 박 선교사를 비교한 것이 틀린것은 아니었다.
박 선교사는 “북한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들은 인권유린 정도가 아니라 집단 학살”이라며 “에스더가 멸절의 위기에 놓였던 유대 백성들을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나섰던 것처럼 미주한인들이 먼저 나설 때 이들을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선교사는 또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장성한 사람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박 선교사는 고통당하는 탈북자들과 북한 주민들을 살리는 방법으로 세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는 김정일 정권 지원을 중단하는 일이고 둘째는 탈북자 구출 확대, 세 번째는 대규모 시위를 통해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일.
그는 “북한은 탈북자들이 들여보내는 물질과 정보가 체제를 흔들 수 있기 때문에 상당히 두려워한다”며 “그러므로 김정일 정권을 무너뜨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탈북자들과 협력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2003년부터 진행돼 오고 있는 6자 회담 등 정치 외교적 화해 노력에 대해서 박 선교사는 강한 회의를 나타냈다.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오히려 정치범 수용소는 증대됐고 수십 만명이 죽음을 당했다는 주장.
그는 “오히려 교회가 역사의 중심에 서야 한다”며 “우리가 먼저 회개하면 하나님이 그 역사를 만들어 가실 것”이라고 말했다.
박 선교사의 강연에 앞서 정치범 수용소에서 태어난 탈북자 신동혁 씨가 증언하기도 한 통곡기도회에는 수잔 숄티 디펜스포럼재단 회장, 한-슈나이더 국제아동재단의 샘 한 이사장 등 다수의 대북 인권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로버트 박 선교사는 2009년 12월25일 중국에서 강을 건너 북한에 들어갔다 모진 고문을 받은 후 43일만에 풀려났으며 한국에서 인권운동을 하고 있던 중 이번 KCC 집회를 위해 미국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혁 씨는 14세 때 불로 등을 지지는 고문을 당하고 수용소 기물을 파손했다는 이유로 손가락을 잘리는 등의 고통을 당했으며 24세가 되던 해 미국에 왔고 미국인 부부에게 입양됐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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