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에 안톤 체홉의 소설들을 좋아했었다. 대부분이 단편이었던 그의 소설은 단편 특유의 간결성과 함께 유머가 있어서 읽을 때마다 그 전개가 흥미 진진했고, 반전은 유쾌했다.
체홉 덕분에 국어시간에 배운 단편 소설에 관한 설명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정확한 문장은 생각나지 않지만 대강 말하자면 단편 소설은 그 첫 단어부터 결론으로 내달려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되니 단편 소설을 쓰는 작업이 아주 멋진 작업으로 보였다. 첫 단어부터 결론을 향해 가야 한다니 대단한 집중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새삼 고등학교 때 배운 내용이 다시 생각나게 된 계기는 “여성의 창” 원고 때문이었다. 처음 1000 자에서 1100자 사이로 원고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는 그저 막연하게 맞춰서 쓸 수 있으려니 했다. 그러나 글자 수를 딱 맞춘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내 스스로가 글을 짧게 쓴다고, 아니 무미 건조할 정도로 간결하게 쓴다고 생각해 왔었으나 그 정도 길이에 맞춰 글을 정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감상문을 거의 써본 적이 없는 나에게 수필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
제일 처음 “여성의 창”에 실린 글은 글자 수 세는 법까지 다르게 적용하는 바람에 편집부에서 거의 30% 이상을 줄이는 수고를 하기도 하였다. 지금도 글자 수 맞추는 일이 쉽지 않다. 단어 수에 집착하여 글을 쓰다보니 이말 저말 빼게 되어 막상은 뼈대만 남아 살은 어디로 다 가버렸는지 도통 모르겠고, 하고 싶었던 말들을 제대로 전달하고는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리고 글을 쓸 때 조심하였다. 한정된 지면을 통해서 생각을 잘 풀어나갔는지, 오해의 소지는 없는지, 그러면서도 솔직했는지 늘 노심초사했다. 또한 “여성의 창”을 쓰게 되었다는 말을 전해드리자 과거 이야기말고 미래 지향적인 이야기를 쓰라고 하셨던 친정 어머니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나름 그 방향을 지향하고자 애썼다.
이제 칼럼을 마치면서 그런 의도를 잘 표현하였었는지 뒤돌아 본다. 미래 지향적인 글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일 게다. 그리고 나는 과거를 바라보면서, 그것을 통해서 미래를 지향하는 사람이고 싶다.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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