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원
정법사 주지
인간에게 있어서 이기심이나 탐욕심은 타고난 굴레다. 이는 무한의 소유하려는 심성이기도 하다.
탐욕은 자기가 필요한 것만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탐욕적 소유욕은 생존하는데 필요하기 때문에 소유하려는 것이 아니라 독차지 하려는 심성이 작용하고 있어 사회적으로 악이라 규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개인에 있어서 탐욕은 삶을 활기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즉 개인적 삶의 원동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탐욕이 악이라면 할 수 없는 긍정적인 심성의 하나이다. 그러나 탐욕이 무제한으로 개방되었을 때 서로간의 피나는 투쟁을 불러오는 것도 사실이다. 이처럼 탐욕은 선악의 양면성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부처님께서 인간의 탐욕을 뿌리 채 뽑으라고 하신 것처럼 말하지만 그것은 부처님의 뜻과는 먼 소리이다. 인간에게 탐욕을 송두리째 뽑으라는 말은 현실적이지도 못하고 사실상 부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도 않았다.
다만 탐욕의 고삐를 무제한 풀어놓지 말고 적은 욕심으로 족함을 알라고 했을 뿐이다. 부처님께서 문제 삼으신 것은 인간의 의지로서의 모든 욕심이 아니라 절제되지 못하는 탐욕이다.
부처님께서 중생의 삶에 있어서 탐욕이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을 알면서도 반드시 절제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절제되자 않은 탐욕은 개인이나 사회의 발전적인 측면으로 작용하기 보다는 파괴적인 면으로 나타날 수 있는 면이 더 강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탐욕과 평화는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아셨던 것이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에게만 고민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이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고민은 역시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더 많이 소유하고자 동분서주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가진 사람의 고통도 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인간의 삶은 존재하는 것이지 소유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물질적으로 어느 정도 소유한 사람은 베품의 미덕에 눈떠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베품의 미덕을 외면하고 무한이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은 자기 자신을 비인간화의 길로 끌어 들이게 되며 오직 소유만이 삶의 목적인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은 윤리도덕적으로 타락의 길을 벗어날 수도 없다.
우리의 지상에 극락정토를 이룩하려면 절할 수 없이 끓어 오르는 탐욕의 불길을 잡는 길 뿐이다.
오늘날 우리 인간은 과거보다 많은 것을 가짐으로서 우리의 삶은 그만큼 편리해졌다. 그렇지만 그만큼 불안도 증가하였다.
그러므로 육체적인 편안이 바로 행복은 아니라는 것과 많은 소유가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 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불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내가 그것을 가진 것이 아니라 잠시 동안 그것을 내가 사용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닌 것은 자기로부터 떠나 보내는 것도 또 하나의 행복일 수 있음에도 눈떠야 한다.
소유욕이 강한 사람이 죽음 앞에서 두려움을 더 강하게 느끼는 것은 죽음 그 자체에 대한 공포라기 보다 자기가 가진 것을 지키는데 대한 공포라고 한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한 공포의 제거는 죽음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소유양식을 감소시키고 존재 양식을 확대하는 일을 계속 시키는 노력으로서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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