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의 시는 언제 읽어도 마음을 촉촉하게 해준다. 1976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출간한 이후 10여권 넘게 시집을 내왔다. ‘희망은 깨어 있네’는 2010년 1월에 낸 시집이니 아마도 최근 작품이 아닌가 싶다.
어느 날 갑자기 덮친 암이라는 파도를 타고 다녀온 ‘고통의 학교’에서 새롭게 수련을 받고 나온 학생이라면서 펴낸 시집이다. 세상을 좀 더 넓게 보는 여유, 힘든 중에도 남을 위로할 수 있는 여유, 자신의 약점이나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여유, 유머를 즐기는 여유, 천천히 생각할 줄 아는 여유, 사물을 건성으로 보지 않고 의미를 발견하며 보는 여유, 책을 단어 하나하나 음미하며 읽는 여유를 이 학교에서 배웠다고 책머리에 쓰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밑바닥에서부터 흔들어 심금을 울리는 시를 써 왔는데 이 수녀님이 이제 얼마나 더 놀라운 시를 써 주시려나 기대하며 책을 폈다. 시보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치유를 원하는 환자임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아픈 것을 낫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기는 왠지 민망하여 나는 오히려 다른 환자분들을 위한 기도를 더 많이 하려고 애썼습니다”라고 한 그 모습을 상상해 본다. 비록 문자화된 시가 아니라도 좋다. 그 모습 그 마음이 바로 이해인의 시이다.
또 이런 말도 한다. 감사만 하기에도 부족함을 느끼는 나에게 친지들이 문병을 오면 하나 같이 말보다는 더 깊은 눈빛으로 말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힘들어도 희망을 버리지 말고 깨어 있으라고 재촉하는 사랑의 언어였으며 함께 아파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연민의 기도였다고 술회했다. 몸은 많이 아프고 마음으로는 문득문득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는 순간에도 나는 이상하게 눈물을 한 번도 흘리지 않았다고 했다.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됨을 삶으로 보여 주며 죽는 날까지 희망에 대해서 말했던 장영희 교수와 “나도 수녀님처럼 생각을 아름다운 시로 표현할 수 있었으면 참 좋을 텐데” 하시던 김수환 추기경의 사진이 있는 방에서 치료를 받으며 힘겨웠던 시간에, 쉬는 시간에 노래처럼 흘러 나왔던 시들을 몰아‘희망은 깨어 있네’에 담아 놓았다.
그의 시는 시인이 되기 위한 시가 아니고, 시인으로서의 시가 아닌 데에 생명이 있다. 일련의 순수성과 그 동기의 초월성이 있다.
‘병상 일기’ 1, 2, 3, 4도 좋지만 여기에 소개하는 ‘아픈 날의 편지’가 더 좋은 이유다. 내가/ 살아서 몇 번이나 더/ 당신을 볼 수 있을지/ 뜨는 해 지는 해를/ 볼 수 있을지요/ 그리고/ 편의 시를 더/ 쓸 수 있을지요/ 그런 생각을 하면/ 졸다가도 정신이 번쩍 들어요/ 언젠가 내가/ 세상을 떠나는 날/ 나는 당신을 위한/ 하얀 새가 되어/ 날아가고 싶어요/ 사랑의 시를 쓰는 바람으로/땅에 묻혀도 자유롭고 싶어요.
박석규
은퇴 목사
실버스프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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