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에 은막을 누볐던 영화배우 김추련씨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에 며칠간 마음이 심란하다. 그와 우리 집은 꽤 깊은 인연이 있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몇 십 년 전으로 돌아간다.
그 당시 우리 집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잠시 잠깐 돈암동 꼭대기에 살았었다. 가까이 살던 그가 어느 날 우리 집에 방문해서 대야에 물을 떠서 발을 씻으며 “서울에 이렇게 공기 좋고 파란 하늘을 가득 들여놓고 사는 곳도 있네”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얼마 후 우리가 다시 좋은 집으로 옮긴 후에도 그는 꽤 자주 우리 집을 들락거렸었다. 주로 바바리 깃을 올리고 단추는 열어두고 언제나 우수에 찬 눈으로 걸었던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말도 별로 하지 않는 과묵한 성격이었다.
그는 우리 집에 와서 식사도 곧잘 하곤 했다. 돼지고기, 두부가 들어간 김치찌개를 땀을 뻘뻘 흘리며 같이 식사를 하면서 맛있다고, 음식 만드는 나의 큰 올케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찌개 하나로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맛있다는 인사를 하곤 했다. 영화 ‘겨울여자’ 대본을 항상 가지고 다니며 열심히 연습하고, 그 나름대로의 노력을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런 그가 왜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지 마음이 너무나 아프다.
인생을 살다 보면 원하지 않았던 일도 일어나고, 큰 암벽을 만나 더 이상 나갈 수 없을 때도 있다. 그 때마다 잘 헤쳐나간다면 좋겠지만 인생이 뜻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돌 뿌리에 걸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재기하는 칠전팔기(七顚八起)란 말도 있지 않은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는 일어선다는 말이다.
우리 속담에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는 말도 있다. 넘어져도 재기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는 너무나 외롭고 생활고에 지쳐 있었다고 한다. 외롭고 쓸쓸할 때 곁에 누가 있었더라면, 아니 그와의 마음을 공유하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배우들의 화려함 뒤에 있는 지치고 힘든 생활을 일반인들은 모를 수도 있다. 마네킹의 앞모습은 화려하지만 뒤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른다. 사람들은 겉모습만 본다. 그는 가수로도 변신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또한 자존심 때문에 무척 많이 힘들어 했을지 모른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면 멀쩡한 사람도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우리 모두 스스로가 바쁘게 살다 보니 누군가가 곁에서 외롭고 쓸쓸한 생활을 한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간다. 누군가가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그의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요즘같이 바쁜 현대인들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그 옛날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이웃들과 정담을 나무고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남의 일에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는 어르신들이 많았던 시절의 인정이 아쉽기만 하다. 갈수록 척박해지는 세상에, 그래도 아직은 따뜻한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세상살이가 고달프다고 목숨을 끊는 사람이 더 이상은 없기를 기대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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