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에 로턴에서 끔찍한 살인 사건이 발생했었다. 모녀로 보이는 두 명의 여자가 피를 흘린 채 죽어 있었던 것이다. 특히 피해자가 한국인이라는 사실로 인해 더 교포사회의 관심을 끈 사건이었는데, 그 후 경찰의 조사에 의해서 그들을 살해한 범인이 바로 죽은 이들의 남편이자 아버지인 이씨로 밝혀져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했었다. 미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았고, 육군 중령으로서 번듯한 직장을 가졌으며, 교인이기도 한 그가 이러한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필자도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난다.
최근에 이 사건에 대한 확정 판결이 훼어팩스 카운티에서 나왔는데, 그는 앞으로 40년 동안 감옥살이를 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해지게 되었다. 그가 사건 당시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적 질병을 앓고 있었다는 변호사의 주장이 판사에 의해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아내와 딸을 살해한 이씨의 살인사건 공판 소식을 접하면서, 그가 판사에게 했었던 말이 나의 마음을 붙잡았다. 그의 말 속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자신의 겸손이다. 그는 자신이 좀 더 겸손했었다면 이번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아내에 대해서 딸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의 삶 앞에서 보다 겸손하고 정직하게 대면할 수 있었어야 했다는 그의 탄식소리와 다름 아니다. 학교에서 상담 윤리를 강의하면서 학생들과 대화하다보면, 선한 양심이 우리가 겪고 있는 상처, 고통과 아픔을 치유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남편 혹은 아내와 자녀들을 구타하는 가정 폭력, 목회자와 교인, 교인과 교인사이에 이뤄지는 언어와 신체적 폭력, 동급 학생들끼리 서슴없이 가해지는 집단 구타와 모욕적 언사가 예사로이 일어나는 학교 폭력, 직장에서 벌어지는 성희롱 등 이러한 사례들은 가해자가 조금만 더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며, 자신으로 인해 상대방이 심각한 고통에 쌓여있을 수 있다는 상황들을 잘 인식하면 방지할 수 있는 일들인 것이다.
이씨가 말한 것 중의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는 두 번째 사실은 전문가의 도움을 찾았더라면 가족을 파괴하고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 이와 같은 일을 벌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그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주위에도 이씨가 경험한 것과 유사한 격한 감정, 울분, 분노, 상처받은 자존감, 모욕, 미래에 대한 불안, 육신의 질병 등을 가지고 살아간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찌 할 수 없어 누르고 또 누르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적지 않다.
너무 늦었다라고 여기고 포기하기보다, 아직 화해할 수 있다는, 치유받을 수 있다는, 다시 예전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다시 한 번 해 볼 수 있다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아직은 존재하는 지금, 이 시간에, 내 말을 들어 줄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가자. 상담전문가나 전문적인 정신치료가이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하더라도 이웃이나 교회나 지역사회에 믿고 내 사연을 털어놓아도 될 만한 사람, 한두 명 쯤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세밑이다. 우리 모두 ‘돌보는 양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남이 성장하도록 돕고, 또 이를 통해 나도 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서로가 서로를 돌보아주는 양심이 우리 한인 사회에 가득하다면, 파국적인 비극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장보철
워싱턴 침례대학 교수,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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