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처럼 흐르는 세월은 어느 새 가을을 밀어내고 겨울의 시작을 알린다. 이름 모를 작은 새 두어 마리가 앞마당에 사뿐히 내려앉아 속삭이는 정겨운 아침, 친구들과 산행이 약속된 날이다. 유난히 서늘하게 불어주는 바람도 여운을 남기라하는 날 가벼운 재킷을 걸치고 사각사각 낙엽 밟는 소리에 발맞추며 산길을 따라 걷는다. 어느 누가 처음 이 산에 올랐기에 어설픈 낯선 산행에 길을 잃을까봐 가는 길 곳곳 나무에 페인트칠로 표시해놓아 길 잃을 염려도 없다.
졸졸 흐르는 냇물을 가로지른 징검다리를 건너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 헐떡거리는 숨을 몰아내자면 바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빠른 걸음으로 쉽게 내려가고 또 언덕을 만나 쭉 오르다 보면 머리위로 툭툭 소리 내며 떨어지던 도토리의 세례는 없지만 수북이 깔린 낙엽위로 찬란한 햇살이 나무 사이사이를 비집고 반겨준다. 가슴을 펴고 팔을 힘차게 저으며 고개를 바로 들고 힘찬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두툼한 꼬리를 마구 흔들며 도토리 알을 찾아 양손에 쥐고 오물거리는 다람쥐들의 재롱이 얼마나 귀엽던지.
정겹게 울어대는 갖은 새소리의 지저귐은 산행에 더욱 상쾌함을 안겨주고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꽃피우다보면 어느새 한 시간을 걸은 거리에 와 있어 더 이상이 아닌 종점으로 정한다. 그만 몸을 돌려 오던 길로 바로 발걸음의 속도를 조금 늦추다보면 뒤쳐져 따라오던 일행들과 만나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되고 준비해온 먹거리를 꺼내 길게 쓸어져있는 통나무에 엉덩이를 부치고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되돌아 산을 내려올 때면 오를 때보다 쉽게 발걸음도 가볍고 근력 운동, 유연성 운동, 유산소 운동으로 등에 땀이 촉촉이 젖어든다. ‘야호’ 하고 이쪽에서 소리쳐대면 저 편에서 ‘야호’의 발랄한 목소리가 응답한다. 나이를 초월한 동심의 세계를 넘나드는 삶의 활력소가 넘쳐나는 2시간 속의 산행은 충분한 만족감에 젖게 한다. 신기하게도 넓게 펼쳐진 맑은 호숫가엔 죽은 듯한 시커먼 나무 기둥들이 우뚝우뚝 서 있어 아직도 생명이 남았나 의문이 생기지만 이채롭게 나목(裸木)밑에 가지런히 깔린 낙엽과 어우러진 초겨울의 풍경도 삼삼하니 좋기만 하다.
광활한 들녘에는 초가집채 만하게 말아놓은 건초덩이가 여기저기 무심하게 뒹굴고 있고, 불어오는 바람 따라 한들거리는 억새풀 사이사이로 둥글둥글한 환한 얼굴들을 내민 호박은 겨우내 짐승들의 먹이로 다 거두지 않고 남겨둔 것이라니 흙을 가까이 하는 사람, 소박하고 욕심 없는 따뜻한 농부들의 너그러움에 흠뻑 정이 간다.
친구들과 낙엽 깔린 산길을 따라 걸으며 마음속엔 허전하고 쓸쓸한 사람들까지도 사랑으로 포옹하면서 삶의 무게가, 모서리가 느껴지지 않는 귀한 오늘과 내일이 되기를 바란다.
유설자
워싱턴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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