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문학 세미나에서 “미래의 수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느냐”는 물음에 대하여 많은 독자들의 기대는 이러했다.
“슬프게 해라. 즐겁게 해 달라. 생각하게 해달라 꿈을 가지게 해달라.” 등 이었다. 나는 거기에 더하여 사랑과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감동을 주는 글이라면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수필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
1978년 11월 영국 런던의 어느 토요일 저녁이었다.
그 날은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인 정경화 씨의 공연이 저녁 7시에 로얄 페스티벌 홀에서 개최되는 날이었다. 나는 당시 세계를 주름잡던 아이작 스턴이나 이자크 펄만 보다도 정경화의 연주를 더욱 좋아했으며, 그의 팬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연주는 어떤 다른 남성 거장들의 연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장엄함과 심오한 아름다움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당시 영국 런던의 한·영 합작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는데, 너무 바쁜 업무 때문에 보통 주말에 공연되는 거장들의 연주회를 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특히 정경화씨는 유럽과 전 세계의 수많은 도시에서 2년 이상의 스케줄이 짜여 있었고, TV와 신문, 각종 미디어에서도 그의 명성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대단하였기에 그의 연주를 런던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매우 드물었다. 나는 3개월 전에 입장권을 예약하고서야 연주회장에 입장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입구 로비에서부터 그는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입구 왼쪽과 오른쪽에 약 5미터 높이의 전신상이 서있었으며, 그 전신상에 로얄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종신 연주자라는 글이 써져 있었습니다. 로얄 필은 세계 3대 최고의 교향악단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나의 좌석은 맨 끝줄 중간쯤이었는데 나의 열에서 운 좋게도 칠순이 넘은 전직 고교 교장 출신이자 아마추어 바이올린 연주자이신 분을 만났다. 그 선생은 현역 최고 연주자인 아이작 스턴에 대하여, 그는 정확한 연주에 근거하는 너무 여성적인 미를 추구한다 했고, 이자크 펄만에 대해서는 너무 기교적이며 화려함을 추구하는 연주자라며, 정경화는 심오한 철학을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선율에 실어 나르는 이 시대 최고의 거장이라고 했다.
드디어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콘첼토 No.1 op.35’의 1악장 연주가 시작됐다. 그의 장엄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연주는 숨이 막히는 듯한 긴장과 희열을 주었으며, 그 악장의 ‘라르고’에서 분위기는 바뀌어 지고지순의 아름다운 선율로 마치 청중에게 고독한 슬픔을 전염시키는 듯 하였다. 마지막 3악장에서는 노도와 같은 힘차고 빠르면서도 장중한 선율이 온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의 연주가 끝나고 청중은 모두 일어나 우레와 같은 박수를 그에게 보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그리고 다섯 번의 커튼콜. 보통 최고의 연주자에게는 네 번의 커튼콜을 요청한다고 한다. 내 옆에 있던 선생의 말로는 다섯 번의 커튼콜은 영국 국왕에게만 있을 법한 경이적인 예외라는 것이었다.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한국의 어떤 지도자나 예술가들이 이러한 존경과 환영을 받은 적이 있었을까? 돌아오는 자동차 속에서,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온통 감동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며칠 전 한국 신문에 정경화씨가 손가락을 다쳐서 당분간 연주를 할 수 없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세계 최고의 거장이 빛을 잃어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빠른 시간 내에 회복해 노년의 중후함을 들려주실 날을 학수고대 한다.
데니얼 김/ 그린벨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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