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기 전 시무했던 교회는 부요하고 은혜로운 교회였다. 살기 좋은 뉴저지에서도 경치가 아름다운 그 곳은 학군이 좋아 안정된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 유태인들이 일찍이 터를 잡은 후에 영국계 아이리쉬가 주로 살다가 최근에는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 곳에는 감리교신학교로 우수한 드루대학이 있어 후배 유학생과 교환 교수가 많이 와 있고, 가까운 인근에는 사립의 명문인 프린스턴대학이 있어 역시 유학생이 많이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지만 사실은 유명한 신학교가 하나 더 있는데 다름이 아니라 1885년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로 감리교 아펜젤러와 함께 한국에 왔던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가 졸업한 뉴 브런스윅 신학교가 있어 찾는 이가 많기도 하다.
나는 그 곳에서 목회하는 동안 여러 유학생을 만날 수 있어 행복했다. 나와 동역하던 교육전도사의 남편이 프린스턴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어 이래저래 유학생을 만나는 폭이 넓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학생회 회장이 9월에 생일을 맞는 학생이 많아 파티할 장소가 없어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우리 내외는 생일을 맞이하는 학생을 목사관으로 초대하기로 하였다. 우리 자녀 네 아이가 공부하고 직장에 다니고 결혼을 하여 모두 떨어져서 살고 있어 자식들 생각이 나기도 하고 마침 내 생일이 9월이라 겸하여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여 초대 하였다.
전원으로 둘러싸인 언덕 위의 2층 목사관은 우리 교단 목회자들이 부러워하는 주택이었다. 아름다운 정원 뒤에는 넓은 밭이 있다. 그래서 그날 메뉴는 거기서 농사지은 유기농 상추, 오이, 깻잎, 그리고 풋배추로 만든 겉절이에다 불고기를 올렸다. 솜씨는 별것 아니었지만 고향 냄새가 물씬 나는 식탁이라서 감동스런 식사였다. 그날이 계기가 되어 생일 파티 장소는 자연히 목사관이 되었다. 그리고 유학생들이 부담 없이 목사관에 드나드는 기회가 되어 친숙해졌다. 그리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채소를 뜯어다 점심을 먹고 가는 일도 생겼다.
그러던 어느 해 마취과 닥터 P집사가 자기도 유학와서 어렵게 공부하던 때가 생각난다면서 나를 찾아와 영어로 “우리 목사님 멋있는 일 하십니다. 이제는 사모님 힘드실 테니 생일 파티는 가까운 한국 식당으로 옮겨서 하시죠” 하면서 기백 불을 손에 쥐어 주었다. 그리고 이래저래 소문을 들은 이 사람 저 사람이 현금을 주어서 매년 식당에 가서 배불리 먹고 푸짐하게 팁을 주고도 항상 남는 장사였다.
벌써 은퇴한지 여러 해가 지났다. 그런데 지금도 크리스마스가 오고 연말연시가 되면 카드가 배달되어 오는 중에 그때 그 인연으로 맺어진 유학생이던 분들에게서 오는 카드가 있다. 지금은 명문대학 교목실장, 부총장, 교수, 그리고 대형교회 목사님들로부터 오는 카드이다. “목사님, 그때 참으로 좋았고 고마웠습니다. 한국에 나오시면 꼭 연락 주십시오” 하면서 근황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아! 기회가 좋았을 때 더 많이 잘 대접할 걸’ 하는 아쉬운 마음이 또 든다.
박석규
은퇴 목사 실버스프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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