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박한 공기 속으로 향하는 히말라야 8천 미터 정상 도전은 20세기 이래 계속되고 있다. 전 세계 14개의 8천 미터 산이 있다. 14좌라 부른다. 등산에 문외한 일반인도 14좌는 친숙한 단어가 되었다. 세계적으로 14좌를 모든 오른 산악인은 24명, 이중 5명이 대한민국에서 배출되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한왕용은 고 박영석, 엄홍길에 이어 11번째로 14좌를 오른 산악인이다. 고 박영석, 엄홍길 선배에 비해 대외적 지명도는 낮은 편이다. 14좌 완등 후,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더 이상 모험적이고 도전적인 등반은 안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는 방송사나 협력사의 지원을 받지 않는 등반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만큼 자기 광고의 기회가 적었던 것이다.
한왕용은 전주 우석대 산악부 출신이다. 한국대학산악연맹 18기이다. 필자의 연맹 3년 선배가 된다. 1994년 초오유(8,201m)로 시작하여 2003년 브로드피크(8,047m) 정상까지 9년간 8000미터 거봉 14개를 올랐다. 등반 도중 숱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단 한 번도 동료 산악인을 잃는 사고는 없었다. 그만큼 동료 또는 선후배에 대한 배려가 남달랐음을 알 수 있다. 그와 함께 96년 아마다블람 등반을 했던 후배 범원택(외대산악부 OB)은 다음과 같이 그를 기억한다.
“왕용이 형은 매우 소탈했습니다. 현지인과 잘 어울렸고 후배들에게 감자를 구워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형은 희생적이었습니다. 원정대에서 궂은일을 도맡다시피 했습니다. 늘 웃는 얼굴을 하셨고 소박한 얼굴에 웃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한왕용은 95년 에베레스트(8,848m) 등정 후 탈진한 다른 팀 대원 구조를 위해 무려 5시간을 정상 부근에서 기다렸다. 기상이 급변하는 8000미터 이상 죽음의 지대에서 목숨을 걸고 구조 활동에 참여한 것이다. K2(8,611m) 등반 때는 동료 산악인에게 자신의 산소통을 넘겨주고 정작 본인은 하산 후 4번에 걸쳐 뇌혈관 수술을 받게 된다. 이러한 초인적 휴머니즘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휴머니스트라고 부른다. 정작 본인은 ‘누구든 그 상황에서는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휴머니스트라는 호칭에 부담을 갖는다.
한왕용, 그는 이제 도전보다는 의미를 찾는 등산을 추구한다. 그는 ‘클린마운틴’ 모임의 대장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지키고자 하는 등반가들의 모임이다. 히말라야 거봉에 버려진 쓰레기, 장비, 식량 등을 수거하는 것이 미션이다. 이러한 그의 열정은 미국 보스턴까지 와서 ‘Leave No Trace(흔적 없이 떠나기)’ 교육을 받게까지 한다.
Leave No Trace 캠페인은 1970년대 미국 산림청과 국립공원관리공단을 중심으로 방문자들이 자연에 최소한의 폐를 끼치는 것을 기치로 시작되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아웃도어 활동을 하는 것이 상식을 넘어 법제화되기까지 풀뿌리 운동이 되었다. 보이 스카우트 대원은 물론 어른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국제 환경운동이다. 이제 한왕용은 14좌 완등자보다는 ‘히말라야 쓰레기 수거꾼’으로 더 유명하다.
워싱턴 인근에는 많은 산악회들이 생겨나고 있다. 주말 또는 주중에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아 떠난다. 하늘이 준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값진 일이다. 우리 커뮤니티에 불고 있는 등산 열풍만큼 자연에 대한 윤리의식도 확산되기를 희망한다. 한왕용이 본을 보이고 있는 ‘흔적을 남기지 않고 돌아오는’ 성숙된 등산의식을 기대해 본다. 함부로 꺾지 않고 자생하는 풀이나 약초를 뽑지 않고 조용히 등산로를 따라 걷는 자연에 대한 매너를 기대해 본다.
정영훈
미주대한산악연맹
전 학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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