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가 없다면 사람은 죽는다. 그렇지만 공기가 없는 우주나 깊은 바다 속으로 가기 전에는 우리는 공기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공기가 풍부한 환경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여러 인종들이 서로 어울려 사는 미국, 지금이야 미국민들은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최고의 가치 중 하나로 믿고 있지만 미국에서 이렇게 다양한 삶들이 어울려 살게 된지는 불과 몇 십 년 밖에 되지 않았다. 1955년 흑인이라는 이유로 운전사에게 자리를 비워달라는 요구를 받고 거부한 로자 팍스, 그리고 그 이후 킹 목사 같은 분들의 흑인 민권운동이 없었다면 지금은 마치 공기처럼 당연히 여겨지는 일들, 이를테면 흑백 인종의 같은 반 수업, 레스토랑 등에서의 식사, 심지어 흑백이 어울리는 운동 경기부터 오바마 대통령 당선까지의 사건들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1970년 22세의 전태일이란 청년이 청계천 평화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근로 기준법을 가슴에 품고 자기 몸을 불사르고 죽었다. 이 후 많은 노동 운동가들의 노력으로 그 짐승 같던 노동 조건은 많이 향상 되어 지금은 형식적으로나마 근로기준법은 지켜지고 있다. 전태일의 힘이다. 이렇듯 세상의 진보는 지나 보면 마치 저절로 이루어 진 듯하지만 사실은 실로 수많은 사람들의 용기와 희생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지금은 그냥 공기와 같아 너무 당연한 듯 우리가 미처 못 느낄 뿐이다.
나는 용산구 남영역 근처 삼각지에서 나고 자랐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매일 타고 내리던 남영 전철역 앞 시꺼먼 건물이 그 악명 높던 경찰청 대공 분실 건물이었다. 그 건물에서 ‘탁치니 억하고’ 박종철 열사가 죽어나갔고 고문기술자 이근안에 의해 김근태 형에게 고문이 자행되었다. 그들은 전철이 지나가는 시끄러운 소리에 고문을 못이기는 비명소리가 묻히라고 그 건물을 전철역 바로 옆에 지었다.
그렇게 고문 받고 그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하던 김근태 형이 얼마 전 운명을 달리하였다. 근태 형을 비롯한 민주열사들은 왜 그토록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자기 몸을 희생했을까? 그것은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만주 벌판에서 일본군에 항거하던 우리 독립군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리라. 독립군들에 의해 공기와 같이 다가 온 독립된 나라의 행복처럼, 우리는 박종철 열사, 김근태 형이 이뤄 놓은 민주주의에 대해 그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온 몸을 던져 이뤄놓은 민주주의가 이명박 정부 들어 많이 훼손되었다.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그리고 심지어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투표의 자유마저 침해되고 있다. 이 전 정부에서는 공기와 같아 불편함을 전혀 못 느끼던 민주주의가 지금은 너무 많이 오염되었다.
김근태 형의 운구가 청계천 전태일 열사의 흉상 앞을 지나는 것을 보며 그가 마지막 남긴 “2012년을 점령하라”라는 제목의 글을 되새겨본다.
“2012년에 두 번의 기회가 있다.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 오로지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
김근태 형의 명복을 빈다.
이덕근
베데스다,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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