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교포 일간지에 실린 고 이병철 전 삼성회장이 임종 시 남긴 24개의 질문에 답한 한 목사님의 글을 보고, 제한된 공간에 적절한 답을 제공했다고 생각된다. 단 한 가지, ‘복음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복음은 독선이다’라는 외답에 대하여, 이 답은 잘못 이해하면 기독교가 마치 독선적인 교리를 가르치고, 또 타 종교와는 절대적 거리를 두는 이기적 종교로 비쳐질까 우려하는 마음에서 ‘복음은 독선이다’라는 답변에 대한, 역시 기독교 성직자로서의 또 다른 측면에서 답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우선, 그 답은 명답이다. 복음은 독선이다. 하느님은 독선하시는 분이시다. 즉 스스로 유일하게 선하신 분이라는 뜻이다. 기독교에서 믿는 신은 유일신이다. 유일신이므로 유일신 외에는 다른 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유일신만이 독선하시는 분이다. 복음이란 유일신과 그의 피조물 사이의 깨어진 관계회복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이며, 그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역시 독선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그 복음을 믿는 인간들(그리스도인들) 역시 독선적 존재인가 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인간은 독선하지 않는다. 아니 절대 독선 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 독선한다고 우리도 독선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느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독선이란 하느님의 고유 단어이지 우리 인간의 단어가 아니다.
예수님도 얼마든지 독선하실 수 있는 분이셨지만 인간으로 이 땅에 계신동안 만큼은 독선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철저히 비독선의 길을 걸으면서 독선을 완성하셨다. 그에게는 사람으로 그가 짊어지고 가야 할 순종이라는 짐이 있었다. 그것은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맛보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독선 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스스로 자신의 ‘독선성’을 부인하고 철저히 비독선적인 길을 선택함으로써 순종의 도를 완성시키셨다. 즉 하느님의 독생자조차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있는 동안 만큼은 독선하지 않으셨다는 뜻이다. 십자가의 언어는 비독선이요, 자기 부인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들이다. 또한 창조주 유일신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창조주 하느님께 나아가는 자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혼돈해서는 안 된다. 복음은 독선이다. 그러나 복음을 믿고 따라 사는 사람들은 독선 할 수 없다. 아직 성화의 과정을 거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의 은총이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겨우 짧은 인생의 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감지해낸 신학적 교리들을 절대화시켜 타종교인은 물론 기독교내에서도 하느님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른 타 교단 사람들에 대한 정죄성 발언을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가 독선하신 하느님을 믿는다고 해서 우리도 이 세상에서 현재 독선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은 기독교인들만 사는 세상이 아니다. 대한민국도 기독교인들만 사는 세상이 아니다. 이 워싱턴 지역도 역시 그렇다. 인간들 스스로 독선 할 수 없는 존재들이면서 서로 독선하려고 하니까 끝없는 종교분쟁과 사회문제를 가져온다. 내가 독선하려 하지 않아도 스스로 독선하시는 하느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세상을 선하게 영원히 통치하실 것이다. 그것이 복음의 끝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때가 오기 전까지는 (예수님처럼)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 십자가를 지고 있는 한 철저히 비독선의 길을 가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하느님과 연합하여 하느님의 독선에 동참하게 된다. 완벽한 복음, 그러나 우리는 그 복음을 겸손하게 섬겨야 한다.
최영권
성프란시스 한인성공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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