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여행 길에 휴게소에 도착하자 마자 급히 화장실로 뛰어들어간 일이 있었다. 급히 들어가면서 그 안을 둘러보았더니 예상과 달리 조용했고 화장실이 여러 개가 이어져 있는데도 문 앞에 서서 기다리는 사람도 없어 느긋하게 화장실 앞에 서서 안에 있는 사람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간 서 있자니 내가 기다리고 있는 바로 옆 화장실 문이 열리면서 안에 있던 사람이 나오자 내 뒷 쪽에서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와 그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그 사람이 걸어들어 온 입구를 쳐다 본 순간 “아차, 내가 실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얼굴이 화끈거려 그곳에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남들은 모두 문 입구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서 있는데 그 줄은 보지도 못하고 눈치도 없이 뛰어 들어와 한국 식으로 화장실 문 앞에 서서 기다리는 나를 보고 “무례한 사람”사람이라고 여겼을 것을 생각하면 지금까지도 부끄러운 마음이 가시지를 않는다. 내가 학생시절에 미국 땅에서 사회적 약속이 생활 속에 녹아있는 현장을 목격한 여러 사례들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사회적 약속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학습은 가정교육에서 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부모들은 가정에서 자녀들과 여러가지 약속을 해 가면서 공부 하도록 자극을 주기도 하고 예절바른 행동을 가르치기도 한다. 우리 가정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부모와 자녀들간의 약속은 성적이 올라가면 무엇을 해 준다거나 숙제를 잘 하면 또 무엇을 사주겠다고 하는 등 얼핏 보기에는 하찮은 작은 일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자녀들은 부모가제시한 약속을 굳게 믿고 해야할 일들을 다 해놓고는 당연히 “약속한 것”을 기다리고 있다가 “성적 올라가면 해준다던 것은 왜 안 해 주느냐” 고 묻기라도 하면 대개는 “너 잘되라고 그러는거지 사주기는 뭘 사주느냐”고 타박을 하거나 네가 해야하는 일을 했으면서 “뭘 사 달라고 하느냐”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약속한 것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핀잔”을 받았을 때 자녀들이 경험했을 “기다림”에 대한 허탈감, 부모에 대한 섭섭함 등의 경험이 반복되면서 급기야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믿으려 들지 않는다. 꼭 학습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행동은 반복하지 않으려는 것이 인간의 행동심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증자(曾子)의 예화에서 말과 약속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가르침을 배울 수 있다.
어느 날 증자의 아내가 시장엘 가려고 하는데 아이들이 엄마를 따라 가겠다고 졸라대면서 칭얼거리고 있었다. 이를 귀찮게 여긴 증자(曾子)의 아내가 아이들에게 “집에서 사이좋게 잘 놀면서 기다리고 있으면 돌아와서 돼지를 잡아주겠다”고 약속하고는 시장으로 떠났다.
마침 집에 있던 증자(曾子)는 아내가 아이들과 이야기 하는 것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시장에 갔던 아내가 돌아와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뒷마당에서 돼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저녁 준비를 하던 증자의 아내가 놀라서 밖으로 나와 보니 증자가 돼지를 잡으려고 우리 안에서 꺼내고 있었다. 깜짝 놀란 증자(曾子)의 아내가 물었다.
“아니 왜 돼지를 우리에서 꺼내십니까?”
“당신이 아이들에게 사이좋게 놀고 있으면 시장 갔다와서 돼지를 잡아주겠다고 하지 않았소?
“아니.. 그건 시장에 따라가려고 칭얼거리는 아이들을 달래보려고 한 말이잖아요. 내가 언제 진짜 돼지를 잡겠다고 말했어요?”
이 말을 듣고 있던 증자(曾子)는 정색을 하고 아내에게 말했다.
“부인, 입에서 한 번 나온 말은 바꿀수가 없는 법이오. 더군다나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됩 니다. 어미가 자식을 속인다면 앞으로 이 아이들이 누구의 말을 믿겠소”.
부모의 입에서 나온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며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서 어린이들의 사회화 과정을 돕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약속이 지켜지는 가정, 학교 그리고 사회가 바로 정의의 사회이며 이러한 사회야 말로 행복한 가정, 건강한 청소년들을 길러내는 희망찬 사회로 가는 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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