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동네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옛날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얘기를 이어 가다가 한 친구가 한국에서 미술 대학을 나오고 국전에까지 당선 되었었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결혼해서 아이 낳고 미국 와서 남편은 공부하니 가사 돌보랴 직장에 나가랴 육아에 그저 눈 코 뜰 사이 없이 여기까지 달려 왔다고 했다. 그런데 세월은 어찌나 빨리 지났는지 지금 화구(畵具)는 구석방에서 울고 있고 가끔 인사나 하는 정도라고 했다.
우리는 미국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 ‘NEVER TOO LATE, NEVER TOO OLD(너무 늦은 것도, 너무 늙은 때도 없다)’로 위로를 받으며 지금 부터라도 전에 하고 싶었던 것들을 시간을 내어 마음 다잡고 계속해 보라고 얘기했다. 여자들이 결혼을 하면 많은 경우 자신들의 꿈을 접고 가족을 먼저 생각하며 살아가게 된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물론 가족을 우선으로 택한다. 남편의 학비가 없으면 그의 학비가 되고 식구들이 배가 고프면 그들의 밥상이 되고 커피가 되고 과외 선생님이 되면서 그렇게 정신없이 세월을 보내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정계에 입문했지만 어려서 부터 자기의 꿈을 잃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온 금세기 ‘철의 여인’이라고 불리는 영국의 전 수상 마가렛 힐다 대처 여사. 그녀는 정치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고 옥스포드 대학 시절 장학생으로 또 보수당 학생회장으로 변호사가 된 후 하원 의원에 출마해서 여러 번 낙방의 고배를 마셨을 때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 당시만 해도 생소한 여자 정치인을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의 확고한 사상과 의지는 많은 의회 의원들마저 결국 고개를 숙이게 했다고 한다.
그녀가 즐겨 쓰던 말은 “정치에서 절대 남자 여자 구별이 없다" “여자도 꿈이 있다"였다니 새삼 그녀의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그런 그녀가 수상을 지내던 11년 반 동안에도 아침 식사는 꼭 자기가 손수 준비해서 가족과 함께 했고 하루에 몇 시간만 도우미를 썼으며 저녁 식사도 대부분 가족과 함께 했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더 많이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다가 세월 속에 몸은 빨리 병들고 늙어 가셨던 것 같다. 그러나 공지영씨가 잘 쓰던 말로서 불교 경전에 있다는 “어디에서 어떻게 하고 살던 꿈을 버리지 말고, 소리에도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무소의 뿔처럼 여자들도 당당히 살아가야 한다” 는 말이 생각난다.
결혼이라는 그물에 걸렸어도 정신을 차리고 앞길을 바라보면 나갈 길이 보인다고 했지만 여성의 재취업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아이 키워놓고 직장 나가라는 남편에게 “당신이 한 번 아이 키워놓고 10년쯤 후에 직장에 한번 나가보라”고, “누가 써 주겠냐”고 했다던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어머니의 희생과 찬양을 아무리 쏟아 부어도 돌아서면 빨래 통, 밥솥이 엄마들을 기다리지만 그들은 가족에 대한 희생과 사랑으로 매일의 일들을 사명처럼 느끼며 감내한다. 오늘 저녁에는 우리 엄마에게 또 내 아내에게 감사하다는 말과 또 그녀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또 올해의 소망이 무엇인지 한번쯤 물어보자.
이혜란
워싱턴 수필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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