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카에다가 언제 생겼는지 공식 기록은 없다. 이들이 자신들의 창립을 축하하는 기념행사를 연 적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1988년 8월11일을 그 날로 본다. 이 날 오사마 빈 라덴은 기독교 유대교는 물론이고 비 수니 온건 회교도까지 적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제거하기 위해 테러 행각을 벌일 것을 추종자들과 논의하는 첫 모임을 가졌다.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인 빈 라덴은 90년 걸프전이 발발하자 사우디에 자신이 가진 병력으로 이라크로부터 나라를 지켜주겠다고 제안하지만 거절당하자 앙심을 품고 수단으로 건너가 사우디 왕가와 적이 된다. 거듭된 빈 라덴의 욕설에 화가 난 사우디가 그의 시민권을 박탈하고 재산을 동결한 후 수단에 그의 축출을 요구하자 그는 소련군이 철수하고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빠진 아프가니스탄으로 이동한다.
그 때부터 그는 98년 사우디아라비아 코바르 타워 폭파, 케냐와 탄자니아 미 대사관 폭파, 2000년 예멘에 주둔 중이던 미 군함 폭파 등 기세를 올리더니 2001년 9월11일에는 민간 항공기를 납치, 뉴욕의 쌍둥이 빌딩과 펜타곤을 공격하는 큰일을 저지른다.
“사람들이 강한 말과 약한 말을 같이 보면 누구나 강한 말을 좋아하게 된다”며 자신감을 보였던 그였지만 그것이‘끝의 시작’인 줄은 몰랐다. 진주만 공격의 성공으로 올 일본이 들떠 있을 때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날뛰어 보겠지만 그 뒤는 모르겠다”던 야마모토 이소로쿠 일본 제독만 못한 인간인 셈이다.
그 후 10년 동안 미국은 끈질기게 그와 그의 추종자들을 색출했고 마침내 1년 전인 2011년 5월2일 파키스탄의 한 은신처에 숨어 있던 그를 사살했다. 이 때 미군이 입수한 컴퓨터 디스크 등 각종 자료는 그 후 알 카에다에 궤멸적인 타격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알 카에다 최고 지도부 30인 중 20인은 이미 고인이 됐다.
이들 자료에는 빈 라덴의 마지막 날들도 기록돼 있는데 그는 점점 고립돼 가는 자신의 처지에 절망하고 아예 알 카에다의 이름까지 바꿀 생각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가 쓴 글 중에는“재난의 연속이다”며 최측근이 모두 살해당한 것을 개탄한 부분도 있고 자식에게“너는 알 카에다와 관계하지 말고 바레인 같은 안전한 곳에서 살아라”고 조언한 것도 있다.
그는 10년간 다섯 차례 집을 바꾸며 도망 다니는 와중에서도 정력제를 먹어가며 3명의 부인에게 4명의 자식을 낳는 등 매우 바쁜 삶을 살았다. 그는 미국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전화, 인터넷 등 통신 수단을 피하고 인간 메신저에만 의존했는데 이 메신저의 신분이 드러나면서 꼬리가 잡히게 됐다.
알 카에다는 아직 잔존하고 있지만 그 영향력은 크게 줄어든 상태다. 이들이 사라지면 또 다른 테러 조직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의 성적표는 테러로 미국을 무너뜨리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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