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 오래 전이다. 그러니까 50년대였던가. 그 때 한국인들이 입에 달고 살다시피 했던 단어의 하나가 ‘애국자’였다.
정치인은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깡패들도 ‘애국자’로 행세했었다. 그들이 휘두르는 폭력도 애국심의 발로라는 식으로. 그래서 나온 깡패 집단의 명칭 중에 하나가 ‘아무 아무 애국 동지회’였다.
당시 또 다른 유행어의 하나가 ‘빽’이었다. 그래서 나온 우스개 소리가 군인들이 전사할 때 ‘빽’하고 비명을 지른다는 것이었다. 그 ‘빽’이 없어 군대에 끌려나와 죽게 된 한이 맺혀져서라는 것이다.
60년대 이후 유행하던 말은 민주주의였다. 그 말이 유행하다가 보니까 민주주의란 단어 앞에 온갖 수식어가 붙었었다. 그 압권은 한국식 민주주의였다. 한국인의 체형에 맞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함께.
언어, 특히 시대적 유행어는 때로 반어적 의미를 지닌다. ‘빽’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던 시절, 부정부패가 만연하던 시절이다. 그 시절 한국 사회의 유행어가 애국이었고 군사정권시절에는 민주주의였던 것처럼.
언어의 반어적 의미가 극단화 된 모습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서 찾아진다. ‘빅 브라더’에 의해 통치되는 1당 독재체제에서 개인의 주체적 이성과 자유로운 감정은 박멸되어야 할 대상이다. 흔적 없이 제거해야 하는 얼룩일 뿐이다.
이를 위해 새로운 언어정책이 실시된다. 언어를 지배하는 당의 의지와 명령에 따라 모든 것은 끊임없이 부정되고 날조되는 것이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으로.
역사적으로 형성된 모든 개념은 그것을 표현하던 낱말들과 함께 사라진다. 이렇게 완벽히 세뇌된 사람들은 당이 지시하는 대로 복종하며 살아간다.
어찌 저럴 수 있을까. 최근 벌어지고 있는 한국의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정·부실 경선과 그 후속 얘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 저지른 부정행위가 상식을 초월해서다.
더욱 경악케 하는 것은 그것을 주도한 당권파가 부정행위 자체를 부정하며 비례대표 사퇴를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자기편의 부정·비리 의혹을 감싸기에 급급한 것이다.
입만 열면 민주주의와 도덕성, 정의를 외쳐왔다. 그런 그들이 이제는 ‘국민보다 당원이 우위’라는 망발도 서슴지 않는다. 반(反)민주주의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어찌 저럴 수 있을까. ‘내재적 접근법’이라고 했나. 그 접근 방식에 따르면 경악할 일도 아니다.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이 뜻하는 의미는 전혀 달랐던 것이 아니었을까. ‘자유는 예속’이고 ‘평화는 전쟁’식으로.
그 행태가 북한을 빼닮아 보인다. 선전성의 수사만 현란할 뿐 민주주의는 철저히 말살된다는 점에서. 그래서 어딘가 섬뜩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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