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성(城)에 생선을 대던 어용상인이 자리했던 니혼바시(日本橋, 관동 대지진 이후 지금의 스끼지(地築) 수산시장으로 옮겼다) 벚꽃이 연지분 바르듯 피었던 가지에 새순이 돋고 먼 산 뻐꾸기 울음소리가 은은하게 들리기 시작하면 그해 첫 생선인 가쓰오(가다랑어)를 먹기 위해 겨우내 노름방에서 죽치던 사내들도 바닷가로 모였다. 또한 이른 아침 밤새 준비한 재료들을 싣고 직장인이 많은 거리로 장사를 떠나는 스시 포장마차가 숫돌을 연마하기 위해 마차에 매달아 끌고 가면서 내는 달그락 소리가 이웃들의 선잠을 깨우면 벌써 스시의 철이 왔나 했다.
이제 신록의 싱그러운 바람이 우리 스시바에도 멘토처럼 찾아 올 텐데, 겨우내 빛바랜 휘장도 깨끗이 빨아 걸고 스시바 벽에 세워놓은 문양이 박힌 접시들도 한 번 자리를 바꾸어보자. 봄이 되면 언감생심, 스시의 역사 속에서 지금도 대를 이어가고 있는 문양(文樣)의 주인이 한번쯤 찾아올 것 같아서다. 조명에 특히 신경을 써보자. 생선의 결 고운 색상과 살아있는 선(線)이 잘못된 불빛 때문에 죽어버리면 손님은 스시바를 떠난다. 자신의 모습도 거울에 한번 비춰보자, 칼을 쥔 자세는 바르고 당당한지 스시를 쥐는 손놀림은 빠르고 흐트러짐이 없는지 복장과 두발 상태는 양호하고 시선은 제대로 두는지, 멀리서 찾아온 단골들의 미식을 위해 참치의 대뱃살은 좀 도톰하게 썰고, 맛보다는 정취를 위해 가쓰오는 껍질을 태워 진한 피맛을 없애주고, 도미일랑은 끓는 물에 껍질만 살짝 데쳐 송이(버섯)를 느끼게 하고, 가을철에 비해 지방이 적은 고등어는 오렌지향이 배게 하고, 은광이 번쩍이는 이철의 진미인 사요리(학꽁치)도 빼놓지 말자.
얼마 전 스시바의 꽃인 황다랑어가 살모넬라균에 감염됐다며 떠들썩했었지만, 2008년 봄에도 참치가 중금속에 오염되었다 해서 세상을 놀라게 했을 때도 그해 가을 연방식품의약청이 생선(Yellowfin Tuna, Bluefin Tuna, Big eye Tuna)의 안전성을 스시바에 서면을 통해 보장해 주었음을 잊지 말자. 참치의 붉은색이 벌겋게 달군 쇠, 데까(鐵火)를 연상시켜 데까스시라 부르는데, 데까(노름꾼의 약칭)가 한손에 화투장을 들고 남은 손으로는 참치김밥을 집어먹으며 노름을 한데서 유래 됐다고도 한다.
1719년 스시란 말을 처음으로 쓴 이래 스시바의 은어는 참으로 많기도 하다. 하나는 핀이라 부르고 셋은 게다(다리 둘에 발판 하나), 간장은 무라사끼(보라빛), 소금은 파도가 일으키는 하얀꽃, 좀 처진 생선은 아니끼(시집못간 늙은 언니)등 청정수역을 바람처럼 가르며 그 운동량이 물고기 중에 제일 많다는 참치도 인간의 손을 거치다 보면 뜻밖에 해를 입나 보다.
한국에서는 이 땅에서 불치병으로 불쌍하게도 죽어간 10살짜리 소 한 마리 때문에 한반도 상륙 저지를 위한 미국 소와의 전쟁도 불사하는 모양이다. 그냥 놔두면 30년은 더 살 소를 3년도 못돼 잡아먹으면서도 이를 못 믿는다면 제가 먹을 소는 제가 키워서 잡아먹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지 않는가? ‘워낭소리’에 눈물을 펑펑 쏟던 심성 곱던 이들의 슬픔은 소 사랑이 아니라 자기 설움이었나 보다. ‘그 옛날 어느 마을에 옻나무에 접붙인 감나무가 있어 해마다 가을이면 먹음직한 감들이 주렁주렁 열리는데 아무도 안 따먹는단다. 그중에 딱 한 개가 독이 들어있어 먹으면 죽는다는 전설 때문이란다.
많은 쉐프들이 한인, 일인 가릴 것 없이 골프를 즐긴다. 혼다가 그런다. 힘껏 휘두른 드라이버에 맞은 공이 그린 위를 하얀선을 그리며 쭉쭉 뻗어나갈 때 그 쾌감은 겨우내 쌓였던 피로를 한방에 날려 보냄은 물론, 그런 리듬을 탄 선(線)과 자연의 빛깔에서 깨달음을 얻어야 비로소 스시의 예술이 탄생된다는 것이다. 반평생을 조금은 고독하게 스시바를 지켜온 이 친구는 그린에서마저도 스시철학을 펼쳐 보이며 틈만 나면 골프장을 찾는다.
우리 스시맨들도 이 봄 마음껏 기지개를 펴고 비상을 꿈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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