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전에도 이 땅에 사람이 살았다.
3백 년 전에도 물론 살았다. 우리는 그들을 우리의 조상이라고 한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고려말 3은(三隱)의 한 사람인 길재(吉再)선생이 현실정치의 무상함을 노래한 시조 절구중의 한 대목이다.
미국에 와서 몇몇 큰 모임에 가면 축하 순서에 가곡은 거의 빠지지 않고 있다. 그중에서 성악가가 준비된 곡을 부르고 난 뒤에 곧바로 앵콜곡으로는 거의 정해진 듯 ‘그리운 금강산’을 연호하며 제청한다.
남북이 분단된 뒤인 1961년에 만들어진 가곡 ‘그리운 금강산’이 민족의 통일 염원만큼이나 사랑받는 가곡이라면 그 훨씬 이전에 금강산을 노래한 판소리가 있었으니 단가 ‘만고강산’이 그것이다.
‘천봉만학 부용들은 하늘같이 솟아있고, 백절폭포(百折瀑布) 급한 물은 은하수를 기울인 듯, 잠든 구름 깨우려고 맑은 안개 잠겼으니 선경(仙境) 일시가 분명하구나.’ 천하제일 금강산이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거늘 그 산세와 기품을 보는 눈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지 98년 금강산 관광이 이루어지고 나서 왠지 서두르지 않으면 모처럼의 기회도 언제 놓칠지 모르겠다 싶어서 와이프와 서둘러서 그해 늦가을 ‘풍악산’을 다녀왔다.
큰 바위산에 여기저기 써놓은 볼성 사나운 글씨들이 거슬렸지만 소리를 하면서 떠올려지는 금강산의 골골과 만학청봉들은 그래서 더욱 생생하다.
말로서 듣는 것, 그림이나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 그곳, 꿈에서도 가보고 싶다는 그곳, 통일이 되면 가장 먼저 가보고 싶어 하던 그곳, 그곳엘 다녀왔다는 안도감보다도 언제 다시 가볼 수나 있을 런지, 아직도 가보지 못한 수많은 국민들의 여망이 먼저 갔다 온 사람들을 핀잔하는 것 같아서 오히려 미안한 느낌을 받는다.
산은 그 자리에 지금도 천만년 의연하거늘, 멀쩡했던 땅, 힘이 없어서 남북으로 갈리고, 갈린 지 수 십년이 지나서야 부단의 노력 끝에 겨우 얻은 기회를 한줌도 안되는 권력들을 틀어쥐겠다고 사람을 죽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옳다구나, 기회는 이때다’ 금강산 관광사업을 막아버렸으니, ‘남북의 지도자’라는 것들은 도대체 ‘민족’에 대해서 뭐하는 것들이냐!
‘어~화 세상 벗님네야 상전벽해를 웃들마소. 엽진화락(葉盡花落)뉘 없을까, 서산의 지는 해는 양류사(陽柳絲)로 잡아매고, 동령에 걸린 달은 계수(桂樹)야 머물러라’
세상이 이렇듯 시끌거리지 않았다 해도 자주 가볼 수가 없었던 곳이니 그곳에 머물고픈 마음을 가슴 절절히 노래한 ‘만고강산’을 그곳에 가서 북장단에 맞춰 춤을 춰가며 뿜어 낼 그날은 언제가 될까, 유신정권하에서 학생 운동하던 학생들이 ‘그리운 금강산’도 맘대로 못 부르게 했던 그 기억이 남아있는 때문인지 어디 가서 ‘만고강산’ 부르면 왜 북한에 있는 산을 좋아하냐면서 ‘종북’ 한다고 할까봐 배우긴 하되 눈치 봐야 하는 게 요즈음이라면 비약일까, 참 몬도가네 같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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