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새벽 6시, 그 이른 시간에 델리 문을 열고자, 아마도 새벽 5시 전에 일어나 집에서 나왔으리라. 고인 임해순씨는 그녀의 마지막 순간이 그렇게 순식간에 닥쳐옴도 모른채, 그녀가 늘 그랬던 것처럼, 부지런히 일어나, 새벽길을 가르며, 본업에 충실하기위해 발길을 재촉하였으리라.
나는 고인의 사망소식을 15일자, 한국일보에서 접하고, 당일, 오후 12시부터 2시까지 열린 고인의 델리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고인이 운영하던 ‘그레이스 델리’ 는 코너에 위치하고 있었고, 업소 벽에는 주민과 고객들이 붙여놓은 여러 메시지들, 스마일 풍선들, 꽃 묶음들, 그리고 사랑과 애도의 카드들이 받아볼 주인을 잃고 길바닥에 놓여있었다.
가게 앞에는 20여명의 동네 흑인주민들이 웅성거리며 서있었다.
그때쯤, DC 경찰국이 제작한 2만5,000달러 범인체포 보상금 포스터가 도착해서, 나는 한묶음 받아 걸어 다니는 행인들에게 배포하기 시작했다. 그중 한 젊은이가 보상금 액수에 눈을 끄게 뜨며, “That’s lot of money" 라며 경탄한다. 죽은 이의 목숨, 범인을 잡기위해 내놓은 그 보상액수, 착잡한 심정으로 포스터를 들여다보니, 붉은 글씨의 ‘2만5,000달러 상금’ 밑에, 호리호리 마른 반백머리의 인자하고 착해 보이는 한국여인의 사진, 임씨 이름과 형사들 연락처, 그리고 간단한 사건 내역이 적혀있었다.
이때, DC 시장실내 아태계 담당 구수현 국장이 현장에서 고인의 아들되는 피터 임씨를 소개해주어, 간단하나마, 애도의뜻을 전할 기회를 가졌다. 델리는 그 동안 장사가 부진해 힘들었고, 돈도 못 버시며 고생만 하셨다며 눈시울을 적실 때, 내 가슴도 울컥하며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순간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스쳤다. 9.11 이후 그 많은 예산과 인력을 동원하였건만 우리가 나아진 것이 무엇인가. 세계의 수도, 그것도 국회의사당이 지척에 있는 캐피탈 힐에서의 이번 강도 살인사건은 어찌된 것인가. 경찰의 힘은 강화되는데, 우리에게 진정 안전이란 있단 말인가?
돌아오는 차속에서 만감이 교차함을 느켰다. 80년대와 90년대를 지나오며, 그 지겨운 범죄와의 전쟁을 DC에서 치루었던 우리 한인들, 죽은 줄 알았던 과거의 역사가 아직도 이렇게 현존해있다니...
그토록 한인들을 위하여 뛴다는 한인 단체장들은 어디에 있는가?
빠른 대책은 시간이 말해주는 것. 이제 한국뉴스, 한국정치에 그만 신경 쓰고, 우리가 사는 이곳,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살아나가야하는 이 지역 한인들에게 관심과 열정을 쏟아부어야 하는데, 아직도, 한국정치인, 대사관 등 모임에는 빠지지 않는 이들이, 왜 이토록 우리 삶과 직결되어 있는데에는 무관심인지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인 상인이 무참히 강도 살인 당했는데 추모 집회에 참석한 한인이라고는 열손가락도 안됐다. 무관심과 나몰라 식의 인식만 가지고는 한인사회의 발전은 없다. 동참과 자발적인 행동만이 이러한 처참한 살인사건의 재발을 막는 길이며 미국사회에서 우리의 위상을 확립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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