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두경 충효국민운동본부 워싱턴지부 자문위원
어른과 어린이는 순서와 차례가 있다는 ‘장유유서’는 모든 예절을 행하는 절차로서 오륜 가운데 하나이다. “찬물도 위 아래가 있다”와 “한날 한시에 태어난 쌍둥이도 형 아우가 있다”는 속담은 이 뜻을 잘 풀이 해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어린이는 어른에 대한 양보와 공경은 물론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윤리규범이지만 상대적으로 어른은 어린이의 귀감으로서 존경의 대상은 물론 사랑과 가르침이 있어야 이루어지는 규범이라 할 수 있다. 만일 경로사상이라 할 수 있는 이 질서가 붕괴된다면 가족관계를 비롯해 모든 사회적 예의질서가 무너져 혼란 속에서 헤맬 것이다.
초만원의 대중교통을 콩나물 시루로 비유했던 어렵고 불편했던 지난 시절에도 노약자나 연장자에 대한 좌석양보는 당위적인 예절과 미덕으로 여겼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세월 따라 변하는 세속 가운데 좌석 예절에 관한 흥미로운 변화 과정을 살펴보자.
양보할 상대방을 보지 않고 외면하던 때가 있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잠자는 체 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 까지는 양심과 예의를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한 점에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으로 반성과 개선의 가능성이 있어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다음이 문제인 것 같다.
만삭의 임산부에도 인정과 예절도 없는 메마른 사회. 좌석 없는 노약자를 정면으로 보면서도 양보의 예절은 커녕 아무런 자책감도 없는 태연한 자세로 상대방을 바라보는 불감증 사회. 보다 못해 주위에서 양보를 권유하면 누가 늙으라 했느냐고 반박 하는 염치없는 사회. 보다 지친 또 다른 주위에서 재차 권유하면 늙은이 나이 먹은 것 나와 무슨 상관이냐? 왜 남의 자유를 침해 하느냐? 호통 치는 어른 없는 사회. 한국 대중교통 안에 양보의 예절과 미덕이 거의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물론 일부 후레 자식들의 소행이겠지만 이런 무례의 바이러스가 만연될까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어찌되었든 예로부터 그 집 아들을 알려거든 그의 아버지를 보라 하였고, 그 집 딸을 알려거든 그의 어머니를 보라 하였다. 그리고 그 가정을 알려거든 그의 부모를 보라 하였듯이 부모의 가정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하고 있다. 그러기에 폐쇄된 옛 봉건사회에선 이를 혼인 선택의 기준으로 삼은 때도 있지 않았던가! 여하튼 아무리 제도와 사회적으로 반상(班常)의 차별 없는 평등사회라지만 지금도 그 사람의 언행과 품위에 따라 반상의 구분이 여전하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는 현실이다.
하여튼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셤 법칙’이 지배하는 가운데 그간 무너져 가는 인륜 도덕의 복원이 절실한 가운데 이 운동의 주체는 바로 우리 노인사회의 몫이 아닌가 생각 된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으니 돌인들 무거울까/ 늙기도 서럽다 하겠거늘 짐까지 지실까(정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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