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생소한 드레초(Derecho)라는 폭풍우가 워싱턴을 강타한 지난 주말부터 며칠을 전기가 끊겨 고생했다. 전기가 끊기고 나무가 쓰러지면서 우리 집도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에어컨마저 고장나 새로 갈려면 큰돈이 들어가게 생겼다. 임시 에어컨을 오더 했는데 집에 배달되려면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니 이 불볕더위 속에 죽을 지경이다. 낮에는 그럭저럭 견딜 만한데 밤이면 너무 더워 잠을 이룰 수가 없으니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다. 이틀이 지나 전기는 들어왔으나 냉장고에 있던 식품들은 모두 상한 후 였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2010년 7월 이 생각났다. 당시 바깥 온도는 요즘의 날씨처럼 100도가 넘실거리는 여름철이었다. 하늘은 시커먼 뭉게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나뭇가지는 세차게 불어오는 거센 비바람에 못 이겨 이리 저리 흔들 거렸다. 우루루-쾅 우루루 쾅 쾅…요란한 천둥소리와 번개 불은 하늘을 두 동강이로 갈라놓을 것만 같았다. 무서운 두려움이 엄습했다. 거센 폭풍우는 땅속에 묻혀 있었던 주파수도, 빌딩에 연결돼 있던 전기도 끊어 놓았다. 책상 위 컴퓨터들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건물 안은 암흑세계로 변해 버렸다 검은 구름으로 뒤덮여 있던 하늘은 장대비로 한치 앞을 가늠하지 못하게 했다. 출입문과 창문들은 세차게 불어오는 폭풍에 못 이겨 흔들 거렸다. 대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무력감이 몰려왔다.
설상가상 전기불도 꺼지고 컴퓨터들도 작동이 안 되는 환경 속에서 직원들과 나는 불안해하고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때 거세게 내려치는 장대비를 헤치며 비를 흠뻑 맞고 작업복 차림을 한 사람이 무겁게 보이는 짐을 끌고 건물 쪽으로 걸어와 “에머전시 푸드(Emerg ency Food)” 를 전해주고 갔다.
순간 “Emergency Food” 라는 소리를 들으니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혹시 전쟁? 아니면 9.11 같은 사건이 또 발생 한 것인가 하는 불길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싸인을 해 주고 커다란 박스들을 직원과 함께 열어 살펴보았다. 커다란 박스 안에는 5년 이상 간직하고 있다가 먹을 수 있는 비누 크기의 두 배로 만들어진 벽돌과 같은 고체 비상식량들이 가득했다. 주스와 물도 포함돼 있었다. 그 안에는 건전지, 연장, 후래쉬, 라디오, 구급상자, 양초, 방수용 성냥, 해머, 화장 등 비상시에 대비한 물품들이 가득했다. 노란 양동이는 변기통이었다. 긴급 상황일 때에 대피하는 방법들에 대비한 주의 사항들이 적힌 인쇄물도 있었다.
이 박스 안의 물건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더 엄습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 위안이 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더불어 평소 등한시 했던 비상식품들에 대한 중요성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번 일을 겪으며 평소 당연시했던 전기의 고마움, 일상의 고마움을 다시한번 절실히 느낀다. 아마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재해는 내게 자연과 사람에 대한 소중함, 고마움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조형자
수필가,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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