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은 금강의 상류인 미호천이 휘감고 돌아가는 강 마을로 백로가 그림처럼 훨훨 날아다니는 순박하고 조용한 산골이었다. 강에는 노랑조개, 말 조개, 올갱이가 지천이었고 고기들의 천국이었다. 홍산이 만월을 밀어 올리는 여름밤이면 얕은 강기슭은 동네 조무래기들의 멱 감으며 내지르는 소리와 소쩍새들의 울음으로 하늘이 들썩이곤 하였다.
양손을 쫙 펼치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키 큰 절벽 ‘추적대’ 강의 산허리를 따라 위태롭게 길게 그어져 있던 길 ‘베로’ 아름답고 슬픈 전설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범박골’ 그리고 ‘살 고개’ 그 아름답던 고향이 지역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쳐들어 온 포클레인에 얻어맞아 조금씩 뭉개져 버리기 시작했다. 골프장이 들어서고 콘크리트 길은 애향심이 전혀 없는 외부인들을 실어 날랐다. 경관이 뛰어난 곳은 돈이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 의해 외국처럼 예쁜 건물들이 들어섰다.
우리 형제들은 고향을 떠난 지 반세기가 가까워 오지만 수시로 그곳을 찾곤 한다. 그럴 때마다 고향의 바뀐 모습을 나에게 전해주었는데 지난해에는 변화된 그 모습을 CD에 담아 영상으로 보내왔다.
그러나 거기에는 내 기억 속에 있는 그리운 고향은 없었다. 어릴 적 노랑조개를 캐며 뛰놀던 추적대 절벽 앞 백사장은 국제 학교가 들어서자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팻말에 갇혀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아낙들의 수다가 터져 나오던 빨래터는 방망이질 소리가 멈춘 지 오래되었으며, 맑고 깨끗하여 식수로 썼던 강물은 읍내 세제 공장에서 나오는 폐수로 인해 콸콸 흐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썩은 멍텅구리 물이 되었다.
백로가 날아다니던 고요가 자동차들의 소음으로 깨져버린 고향 마을, 그 곳에서 얼마 전 한 행사가 있었다고 했다. 미국에 오기 전 전국 문예 공모전에서 고향에 대한 시 ‘옛날 그 자리에서’를 써서 최우수 작품으로 당선된 적이 있었는데 최근 그 시를 오빠들이 마을 이장 및 주민들의 도장을 받고 허락 하에 액자를 만들어 마을회관에 걸어놓고 동네잔치를 했다는 것이다.
예전 아름다운 마을을 묘사한 그 글을 보고 동네 어른들이 매우 기뻐했다는 말도 들었다. “별이 밤새 백사장에 나와 놀아도 안개가 갈대를 껴안고 잠을 자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던 마을(옛날 그 자리에서 일부).” “밤이면 마당 가득 별들이 마실 오고 새벽이면 소의 워낭 소리에 까치가 눈 비비는 곳(강 마을에서 일부).” “구름은 한가로이 물에 떠다니고 고기들만이 나뭇가지를 딛고 하늘 위를 오르내린다(물그림자 일부).” “냇물에 어둠을 풀어 길을 내고 달이 흘러간다 미역감는 처녀 애 첫사랑 눈뜬 허리를 훔쳐보면서 미루나무 가지 끝 때 까치 새끼 잠투정에 빙긋이 웃다가 소리 없는 소리에 놀란 부엉이 숲 속으로 숨어 버리고 철없는 풀무치만 달 속으로 뛰어든다(달과 길 일부).”
이제 그 옛날 순박한 고향은 없다. 오직 마을 회관에 액자 속 시로만 남았을 뿐이다. 나는 훗날 고향과 만나는 날 낯선 얼굴과 마주 칠 것이 겁이 난다. 산등성이 너머까지 흘러넘치던 별들, 마을에 내려앉은 괴괴하고 으스스한 정적, 맑은 강물에 은빛으로 부서져 내렸던 달 빛, 그리고 작은 조각배 하나. 내가 떠올리는 고향의 모습이다. 지금도 등잔 바위에 백로가 날아와 앉는지 그 안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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