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막힐 듯이 아름다운 영화 한편을 같이 보고 싶다는 화가 친구의 제안에 지루한 일상을 탐미로 도피하듯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달렸다. 영화광이고, 시각예술을 공부하며 절대 미를 추구하는 우리들은 아마도 우리가 본 모든 영화 중에 이 영화가 가장 아름다운 영화일 것이라고 동의했다.
“세상의 색채와 향기로부터 우리는 서로에게서 자기 자신을 찾고 있었다.”
“우리는 사랑의 은신처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길은 우리를 죽음의 땅으로 인도했다.”
“당신은 우리를 버리고 떠났지만 우리 산자들은 누에고치로 당신을 감쌌기에 당신은 나비처럼 새로운 세계로 떨쳐 나올 것이다.”
“나는 낯선 땅에 갇힌 나이팅게일, 그리고 당신은 나의 황금빛 새장”...
세르게이 파라자노프의 ‘석류의 빛깔’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시들인데 적어도 영화를 본 직후엔 예술가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오랜 의문에 대한 섬광과도 같은 답을 본 듯했다.
드라마의 극적 전개가 아닌 시와 영상으로 인간의식이 갈 수 있는 가장 심미적인 탁월한 정신 상태를 그려내고 있는 이 영화는 삶의 감각이 어떻게 선명한 색조와 형태의 흐름으로 표현 가능한가를 실험하며 보여준다.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인류의 삶에 내재적으로 흐르는, 인간으로 태어남의 숙명적 비탄이 고결함과 빛이 가득한 예술적 감각으로 전개되는데 바람, 햇살, 동물, 가면, 종교의식, 사랑, 죄, 죽음을 다루는 가장 탁월한 예지와 심미안을 지닌 감독의 세밀한 연출이 슬프도록 아름답다.
석류를 깨물었을 때의 시린 맛과 찬란한 분홍색조의 빛나는 아름다움에 비견할 이미지들이 영화 전편에 빛난다.
공산 소련에서 감옥에 가기도 했다는 감독의 얘기를 들으며 저항하는 인간의 정신이 탐미의
창조로 이어지는 예술가의 고뇌에 찬 삶과 인간에 대한 애정을 절절히 느낀다.
샌프란시스코의 드영 뮤지엄에서는 반항하는 인간은 아름답다! 라는 사실을 즐거운 탐색의
시간으로 즐길 수 있던 또 하나의 전시를 보았다. 패션계의 이단으로 기상천외한 아이디어와 유머, 고전에 대한 철저한 이해로 인해 펑크적 탈피가 더욱 빛나는 장 폴 고티에의 의상전<사진>이었다.
컴퓨터에 의해 안면근육이 움직이고 말을 하는 마네킹들의 전시 방식이 즐거웠고 반항적이고 탐미적인 기상천외한 의상의 스타일이 멋있었다.
파리의 스튜디오에서 하나의 의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촬영한 영화는 고티에의 패션쇼를 위해 밤새워 일하는 숙련공들의 노고와 자신들이 애써 만든 옷을 입은 패션쇼 모델의 아름다움에 경탄하며 눈물을 흘리는 연로한 재봉사들의 노동과 그들이 창조한 아름다움의 대비에 포커스를 두고 있었다. 유쾌한 반항하인 고티에의 ‘실력’을 바라보는 게 즐거운 전시였다.
미의 추구는 마약이나 마술에 취한 듯, 삶의 총체적 비극을 응축하고 승화하며 정신의 극치점을 향하는 예술가와 장인의 집중된 노고를 필요로 하는데 수많은 예술가들이 고난을 달게 받아들일 만큼 마력적이다.
경탄을 자아내게 하던 영화장면의 아름다움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름다움의 추구란 예술가의 피와 땀과 눈물을 요구하고 인류의 슬픔과 고통, 열망이 예술의 자양분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은 여행이었다.
<박혜숙/화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