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지만 크리스마스에는 뭔가 특별한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기대했던 그 특별함은 샌프란시스코에 비가 억수같이 퍼부으면서 정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되어 버렸다.
반나절을 집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다가 크리스마스를 이렇게 보내고 있다가는 왠지 억울할 것 만 같아서 우리 동네 조그만 극장을 찾았다.
겉으로 보기엔 허름한 이 극장 앞에는 이날 따라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극장에는 단 두 명의 직원이 있었는데, 한 명은 티켓을 팔고 또 다른 한 명은 옆에서 팝콘을 팔고 있었다. 이렇게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극장에 몰릴 거라는 예상을 못한 듯했다.
두 개의 상영관이 있는 이 극장에는 레미제라블과 호빗이 상영된다고 안내되어 있었다. 나는 일단 레미제라블을 보러 들어갔다. 왜냐하면 크리스마스니까. 나도 장발장처럼 사랑의 메시지를 전할 거라고 나름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으니까.
영화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팝콘을 팔던 여직원이 들어와서는 호빗 상영관과 바뀌었으니 옆의 상영관으로 옮겨 달라고 전하고 나갔다.
그렇게 영화가 힘들게 상영이 되었다. 하지만 그 조그만 스크린에도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에 흠뻑 빠져들 수 있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러셀 크로우는 비록 악역이었지만 여전히 멋있었고, 앤 해서웨이는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잘라도 여전히 예뻤다. 앤 해서웨이가 죽어가는 장면에서 슬퍼지려 던 참이었다. 갑자기 그 조그만 스크린에 영화 필름이 탄 흔적이 보이면서 영화상영이 중단된 것이다. “아니. 디지털 영화가 아니었단 말이야?”
그런데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았다. 그냥 웃음만 날 뿐이었다. 성탄절에 레미제라블을 보러 와서 상황이 딱 레미제라블 신세가 되었는데도 말이다. 극장 안 손님들은 갑작스러운 사고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직원들에게 오히려 격려를 해주고 나갔고, 나 또한 “그럴 수도 있지”라며 이런 상황이 그냥 쿨하게 넘어가졌다.
영화를 끝까지 보지 못했지만, 분명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 주는 일 외에는 길이 없다는 이 영화의 메시지가 벌써부터 전달되어서일까? 이 영화의 메시지가 성탄절이라서가 아니라 항상 우리 삶에 녹아 들어가길 바라며 영화를 다시 보기 전에 빅토르 위고의 원작부터 다시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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