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이탈리아의 두 도시 베니스와 제노아는 지중해 무역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당시 아시아와의 교역에서 이미 독점체제를 구축한 베니스를 따라잡기 위해 제노아는 대안책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제노아 출신 콜럼버스는 스페인과 손잡고 항로 개척에 나섰고, 그 결과 1492년 신대륙에 이르렀다.
여기서 15세기 문명 배치도를 살펴보면 의문점이 생긴다. 항로 개척에 나서 먼저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 왜 하필이면 스페인일까. 지역연구와 점성술 분야에 탁월한 기술로 인도양을 주름잡고 다닌 아랍 상인들, 대서양으로 진출하는데 지리적으로 스페인보다 유리한 위치에 놓인 포르투갈, 이미 A.D. 300년에 점성술을 이용한 항해기술로 카리브 해역을 탐험한 기록을 지닌 마야 인디언들은 무엇 때문에 그 기회를 놓쳤을까.
나름 이유는 있었다. 아랍인들은 코란 경전의 명령, “무슬림은 지중해 바깥을 여행하면 안 된다”에 순응하는 자세였고, 포르투갈은 “이웃나라 스페인쯤이야…”라는 자신감과 우월감에 빠졌고, 마야 제국은 자급자족에 충분한 자원을 가졌기에 “밖에 나가면 고생”이라는 생각으로 아쉬울 것이 없었다.
특히 중세기에 가장 부강한 나라로 자타가 공인했던 중국(명나라)은 콜럼버스가 대항해 시대를 연 것보다 80년이나 앞서 대규모 함대를 인도양, 중동, 아프라카로 7차례나 보내며 교역 영역을 확장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정권이 바뀌며 “해외 원정은 국력을 낭비할 뿐이다. 당장 중단하라”는 유학자들의 목소리가 높아갔고, 외국 선적이 중국항에 진입하는 것을 막는 해금(海禁)정책을 취했으며, 상인들은 바깥세상은 야만인과 미개인으로 득실거린다는 생각으로 내수에만 신경을 썼다.
스페인이 먼저 대서양을 건널 수 있었던 이유는 항해기술이나 선박건설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유럽을 군림해보려는 비전 그리고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었다. 즉, 승부욕, 열린 마음, 그리고 관심이었다.
합격률 한자리수를 자랑하는 대학의 3학년에 재학 중인 S양은 한국에 계신 부모로 부터 꾸지람을 들었다. “네가 미국에서 공부하는 학생 맞아? 중학교 때부터 8년 넘게 살았는데 어째서 아직 적응이 안 된다고 불평하니?” S양은 남보다 뛰어난 기술(성적과 점수)은 가졌지만 자신 스스로를 플라토의 동굴 속에 머무르게 했다. 한국 유학생들끼리만 어울리고, 한국 드라마, 영화, 노래에 빠져 밖의 문화와 사회를 내다보지 않았다. “졸업하면 어차피 한국으로 돌아가는데…”라는 생각으로.
한인 학생이 가장 많이 다니는 주립대의 졸업반인 H군은 “언어에 재능이 있다”는 칭찬을 어릴 적부터 들었다. 그는 자신이 받은 토플과 SAT의 높은 영어점수가 그 재능의 증거라고 믿고 있다. 마치 언어능력을 숫자만으로 평가하지 않는 캠퍼스 바깥세상을 한 번도 구경해본 적이 없는 학생처럼 스스로를 스탈린의 철의 장막 속으로 가두었다.
S양과 H군은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첫째, 15세기에 스페인이 먼저 대서양 항로를 개척할 수 있었던 비결은? 둘째, 1960년 대 시작된 국제 학력평가에서 매년 중간 아니면 꼴찌에 가까운 성적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50여년 간 미국이 최강국으로 버티고 있는 비결은?
과거나 현재나, 국력은 기술 혹은 점수에서 배양되지 않고 자국민의 태도, 즉, 모험심, 개척정신, 창업정신에서 싹튼다. 플라토의 동굴과 스탈린의 철의 장막에 안주하려는 학생은 편안함에 만족할 것이요, 열린 마음과 모험을 말하는 학생은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것이다. 안주의 장막을 찢을 때 바깥세상이 보인다. 바깥세상이 보일 때 비로소 남다른 성취에 갈증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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