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연간 사망자, 교통사고 희생자보다 많아
▶ 35~64세 자살률 10년 새 30%↑ 남성이 여성보다 3배 이상 높아 “긴 불황에 경제적 압박 탓”분석 주로 약물복용·목 매달아‘선택’
지난 10년간 중년 미국인들의 자살률이 급등했다. 연방 질병예방통제센터(CDC)가 지난 3일 공표한 자료에 따르면 자살로 인한 연간 사망자 수는 자동차사고로 인한 희생자 수를 넘어섰다.
지난 10년간 중년 미국인들의 자살률이 급등했다. 삶과의 고단한 싸움에서 패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쓸쓸한 중년이 늘어났다는 얘기다. 이들은 35~64세의 연령대에 속한 베이비부머 세대다. 연방 질병예방통제센터(CDC)가 지난 3일 공표한 자료에 따르면 자살로 인한 연간 사망자 수는 자동차사고로 인한 희생자 수를 넘어섰다. 2010년 한 해 동안 차량사고로 3만3687명이 숨진데 비해 3만8364명이 자살을 선택했다.
이제까지 자살은 주로 10대 청소년들과 노인들의 문제로 여겨져 왔다. 10대는 이성보다 충동의 지배를 받는 ‘격정의 시기’다. 이들은 앞뒤를 재보는 차분함을 ‘경멸’한다. 인고나 기다림의 미덕을 깨우치기엔 세상의 연륜이 너무 짧다. “출구가 없다”는 판단이 들면 이들은 자폭을 선택한다.
반면 많은 노인들은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는 죽음의 그림자가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다. 자살한 노인들은 대부분 불치병 환자다. 고통 속에서 아무런 희망이 없는 시한부 삶을 견뎌내는 것은 버거운 일이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그림이 바뀌었다. 중년의 자살률이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세를 기록한 것이다.
1999년부터 2010년에 이르는 사이에 35~64세 연령대에 속한 미국인의 자살률은 무려 30% 가까이 늘어났다. 해당 연령층 인구 10만명당 17.6명꼴이다. 이전의 수치는 10만명당 13.7명이었다.
중년층의 자살은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 늘어났다. 하지만 자살률은 여성보다 남성 쪽이 훨씬 높다. 중년 여성은 1999~2010년 사이에 10만명당 8.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집계된 반면 남성은 10만명당 27.3명이 자살했다.
연령대를 세분해 살펴보면 50대 남성의 자살률이 가장 높았다. 지난 10년간 50대 남성의 자살률은 50% 가까이 늘어난 10만명당 30명을 기록했다.
여성의 경우 60~64세 연령대의 자살률이 10만명당 7.0명으로 가장 높았다. 10년 동안 거의 60%가 늘어난 셈이다.
자살률은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자료를 분석한 CDC 관계자들과 학회 연구원들은 이 같은 결과가 통계상의 오류나 이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들은 또 보고가 되지 않는 자살 건수가 상당수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통계에 잡힌 수치는 축소됐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자살률 증가에 관한 책을 써낸 럿거스 대학의 사회학 부교수 줄리 필립스는 “CDC가 발표한 자료도 실제 수치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이라며 “누락된 건수가 만만치 않게 많을 것”으로 단언했다.
자살을 택하는 이유는 다양하고 구구하다. CDC의 관리들과 연구원들은 “그 누구도 자살률 증가 이유를 확신을 갖고 설명할 수 없다”고 시인했다. ‘산 자’는 죽음을 택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CDC 관계자들은 나름의 설명을 제시했다. 이들에 따르면 지금의 중년층은 다른 세대에 비해 청소년 시절에도 더 높은 자살률을 보였다. 기록을 놓고 보면 이 연령대는 베이비부머 그룹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은 집단이라는 얘기다.
CDC 부소장인 이레아나 아리아스는 중년층 베이비부머 그룹의 인생관이나 삶의 선택에 관한 시각이 다른 연령대와는 조금 다른 게 아니냐는 추론을 제시했다.
물론 외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 10년은 경제적으로 힘은 시기였다. 무자비하게 이어진 장기불황으로 너나없이 녹초가 된 고단한 세월이었지만 특히 중년층의 마음고생이 심했을 터이다.
부양가족을 줄줄이 거느린 중년 가장에게 불황은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거대한 늪과 같다. 더구나 가장 안정된 소득을 필요로 하는 나이에 생활전선에서 밀려난 50대 가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빠져들기 십상이다.
결정타를 맞고 캔버스 위에 나둥그러진 복서처럼 안간힘을 다해 다시 일어서려 버둥거리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설사 간신히 일어선다 해도 역전승을 노릴 기력은 사라진지 오래다. 세상은 넓지만 그가 설 곳은 없어 보인다.
바둑으로 말하자면 더 이상 돌을 놓을 곳이 없는 불계패다. 그 때 죽음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50대 중년 남성의 자살률이 가장 높은 증가세를 보인 것은 이런 연유에서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자살률은 재정적 스트레스와 경제적 어려움이 심한 시기에 높아진다.
마음만 먹으면 옥시콘틴이나 옥시코돈과 같은 처방 진통제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는 점도 자살률을 끌어올리는 무시 못 할 요인이다. 아편성분을 지닌 이들은 많은 양을 한꺼번에 복용할 경우 죽음을 불러올 수 있다.
아직도 대부분의 자살에는 총기가 사용된다. 그러나 관계자들에 따르면 약물을 복용하거나 목을 매달아 목숨을 끊는 사례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약물을 이용한 자살은 지난 10년간 24%나 증가했다. 목을 매달아 자살한 건수는 무려 81% 급증했다.
아리아스 박사는 중년층의 자살 증가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처한 독특한 재정적 환경에 기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연령대는 이른바 ‘샌드위치 세대’에 속한다. 위로는 돌보아 드려야 할 부모가 있고, 아래로는 보살펴야 할 자식들이 있다.
아리아스 박사는 이들이 유난히 예민하다거나 선천적인 자살 성향을 지닌 것은 결코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보다는 짐 져야 할 책임이 훨씬 크고 무거워진데서 오는 비극결과다.
럿거스 대학의 연구원들은 미래 세대의 경우에도 자살위험이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결혼생활의 변화, 사회적 고립, 가족 내 역할 등 베이비부머가 직면한 문제들이 그대로 다음 세대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보스턴의 미술사가인 낸시 베를리너는 2년 전 남편을 잃었다. 당시 58세였던 남편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남편의 자살 사유는 복잡하다. 하지만 낸시는 자살예방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에 따르면 자살은 모방충동을 불러온다는 점에서 특히 위험하다. 자살을 하나의 선택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자리를 잡게 되면 일이 더욱 복잡해진다.
자살은 선택이 가능하다. 하지만 책임 있는 선택은 분명 아니다. ‘죽을힘을 다해 사는 것’이 참다운 용기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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