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늘어나는 ‘골드미스’ 결혼식에 대해 한 지인이 뚱딴지같은 말을 했다. 골드미스 결혼식은 축의금도 ‘골드 급’일 터이므로 겁난다고 했다. 보상심리 탓인지 모르지만 골드미스들의 결혼식은 대개 호화찬란하고 피로연도 전문 사회자나 가수가 등장할 정도로 거창하므로 일반 결혼식에 갈 때보다 축의금 봉투가 훨씬 두터워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한인사회 마당발인 그 지인이 축의금을 걱정한 건 이해할 만하다. 매달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몇 차례씩 참석해야 하는데, 그 때마다 100달러를 봉투에 챙겨간다고 했다. 경조금이 부담스럽기는 대다수 한인들도 매한가지다. 한국에서 몸에 밴 봉투관행을 미국에 이민 온 뒤에도 버리지 못하고 투덜거리며 계속 이행한다.
요즘 한국에선 골드미스 가수 장윤정(33)의 결혼이 화제란다. 신랑이 두살 연하의 방송국 아나운서여서 화제고, 그녀의 재산을 탕진했다는 원망을 들은 어머니와 남동생이 TV에 출연해 그녀를 공개적으로 매도한 것도 화제다. 특히 자신의 팬클럽 회원 남녀가 지난 4월 결혼하자 물경 1,00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네고 축가까지 불러줘서 화제가 됐다.
장윤정의 봉투를 열어본 신랑신부는 그녀의 히트곡 제목처럼 ‘어머나!’를 연발하며 입이 벌어졌겠지만, 보통사람 결혼식에 그렇게 많은 축의금을 내는 하객은 거의 없다. 한국갤럽이 지난 4월 결혼축의금과 관련해 19세 이상 남녀 1,2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0%가 5만원을 낸다고 답했다. 장윤정 축의금의 200분의 1 수준이다.
응답자 중 10만원 이상을 낸다는 사람은 19%, 3만원 이하를 낸다는 사람은 8%였다. 나머지 약 4%는 무응답자였다. 축의금을 내지 않는다는 뜻일 수 있다. 전체 응답자의 평균 축의금은 6만원으로 산출됐다. 지난 2005년의 평균 축의금 4만2,000원에 비해 1만8,000원이 늘어난 액수다. 전체 응답자의 68%가 결혼 축의금에 부담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한인사회의 결혼축의금 평균 액수는 공식 조사된 적이 없다. 본국 갤럽조사 집계를 원용하면 10명 중 7명이 50달러(5만원)를 낸다고 볼 수 있다. 10명 중 2명은 위의 지인처럼 100달러(10만원)를 낼 터이다. 본국에 비해 활동반경이 좁은 한인사회에서는 경조사 빈도도 상대적으로 낮지만 한인의 경제력도 상대적으로 낮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원래 결혼 축의금은 상부상조의 미풍양속이다. 옛날 너나없이 어려웠던 시절 동네에서 혼인잔치가 열리면 이웃들이 몰려와 품앗이 했다. 십시일반 금품으로 돕기도 했다. 지금은 축의금이 마치 결혼식장 입장료처럼 변질됐다. 청첩장이 고지서로 불리기 일쑤다. 축의금을 마치 세금처럼 마지못해 낸다는 뜻이다. 한국인들만 부담하는 ‘미풍양속 세’이다.
지난 주말 교회에서 희한한 결혼식이 있었다. 전 담임목사님의 딸과 미국인 신랑의 혼례였는데, 식장에 꽃장식이 전혀 없었다. 애당초 청첩장도 없었다. 사회자도, 피아노 반주자도, 화동도 없었다. 젊은 미국인 목사가 주례를 맡았는데 기도순서도 없었다. 들러리 가운데 한명이 기타 반주에 맞춰 축가를 부르는 동안 신부가 아버지의 안내로 입장했다.
신랑신부가 100% 주인공이었던 이날 혼례의 하이라이트는 결혼서약이었다. 남들처럼 주례에게 “I do”(예)만 연발하지 않았다. 행복감에 푹 빠진 신부가 주례사만큼이나 길게 사랑을 고백했다. 신랑도 주머니 속에 준비했던 장문의 쪽지를 꺼내 읽으며 영원히 변치 않을 사랑을 맹세했다. 양가부모는 물론 식장을 메운 하객들도 감격해 눈시울을 붉혔다.
보나마나 호화판일 장윤정의 결혼식(28일)에선 그녀와 신랑 도경완이 들러리가 되고 주례를 맡을 KBS 사장이나 축가를 부를 동료가수들이 주인공이 될지 모른다. 아니, 장윤정이 팬 결혼식에 준 1,000만원의 몇 배가 들어올 축의금이 주인공일 수도 있다. ‘미풍양속 세’를 몰아내는 첩경은 결혼식을 간소하게 치르는 것임을 지난주 혼례식에서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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