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석 2013 본보 문예작품공모전 시 부문 당선자
붉고 황홀한 자목련 꽃잎도 바람에 지고 하얀 속살 흐드러진 캘리포니아 라일락도 저물어 사라진 요즘엔 다만 보랏빛 은은한 자카란다를 길가에서 기다리며 하루를 보낸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제 보던 사람은 알 수 없어도 같은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나무엔 기대할 희망이 있다. 따사롭게 비추는 햇볕이 있고 잊지 않고 찾아주는 벌과 나비가 있고 지면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비가 있다면, 거기다 가끔 잔가지를 흔들어주는 바람이 분다면 분명 아름다운 꽃은 활짝 필 것이다. 그 꽃을 오가며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면 시심이 올라 아름다운 자태를 노래할 것이다.
2주전 오피니언 ‘발언대’에 오른 어느 시인의 글 ‘잡풀 무성한 문학계’를 읽고 나는 절망감을 느꼈다. 아마도 나는 평생 시인은 못되리라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론도 모르고 시학도 모르는데 그분 말씀대로 과연 시를 쓰는 것이 가당키나 한 짓인가. 더구나 대학 시절에 전공으로 시 작법을 공부한 것도 아닌 처지이다.
문학의 길은 물론 어렵다. 시작하는 것부터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고 버텨내기도 힘에 부칠 뿐 아니라 성공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만큼 수도자의 심정으로 한 발 한 발 정진할 뿐이다. 그러나 어느 시인은 또 이렇게 말했다. 시인은 철들면 이미 시인이 아니라고.
이성적인 머리보다 감성적인 가슴으로 사물에 접근하는 것이 시에 대한 본질이라고 본다. 자연을 바라보며 그 순수한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인생을 돌아보며 희로애락 뒤에 감추어진 의미를 되새기는데 꼭 소크라테스의 기초 사상을 알아야 하고 미학을 알아야 하는가.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연습에 매진해야 하는 것은 어느 분야에서나 공통적인 필수조건이다.
다소 침체에 빠진 한국 문학계를 문인의 한 사람으로서 돌아보며 순수한 의도로 비판하는 그분의 말씀에 무례하게 딴죽을 거는 것은 아니다. 그분 지적처럼 일기 수준이나 잡글 하나 써 놓고 문인 행세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러나 그런 부류 때문에 한국 문학이 도태되고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는 깊이 없는 부류와 함께 ‘문인’으로 동일시되기 싫다는 뜻으로 들린다.
문인이라는 직함 하나로 지식인 대접을 받던 시대는 지났다. 문인은 결코 벼슬이 아니다. 또한 글을 쓴다고 다 지식과 지혜가 풍부한 것도 아니다. 다만 문학을 사랑하고 올바른 글을 쓰고 싶다는 열정이 충만하고 더불어 정상적인 제도권에서 인정받는 작품이 하나라도 있다면 문인으로 불려도 큰 무리가 없지 싶다.
지금 어느 작가의 일성이 뇌리를 스친다. 한국 현대문학에서 깊이 있는 작품은 단지 최인훈의 ‘광장’과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뿐이라고. 이 작가의 말을 그대로 따른다면 그동안 스쳐 간 수많은 문인들은 다만 잡풀이 아니었겠는가.
나는 다만 잡풀이라도 무성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학은 짧은 시간에 이루기 어렵다. 어쩌면 죽기 전에 다 이룬다는 보장도 없다. 평생에 단 한 작품만을 남길 수도 있고 사후에야 겨우 인정받을 수도 있다. 그나마 실패할 가능성이 더 많다.
그러나 열정이 있고 꿈이 있다면 도전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도전하고 있다면 비록 초등학교 시절에 배운 한글 실력뿐이라도 문학을 사랑하는 깊이만큼 문인이라 자칭해도 문제가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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